[후계자 도전과 과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공유・구독으로 변신 꿈꾼다

2019-09-24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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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의 노사 무분규, 현대차 변화 순풍 기대

현대차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로

순혈주의 깨고 인사ㆍ채용 혁신…불도저 경영 변주곡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데일리동방]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가슴을 쓸어내렸다. 9월 7일(현지시간) 현대글로비스 소속 골든레이호가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 항구 인근에서 기울어진 사고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갇혀있던 한국인 4명이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게 됐다. 다만 이번 사고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후계 구도에 미칠 영향이 주목받았다.

◆지배구조 개편 분위기, 올해가 적기

현대차 3세 체제 완성을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이 필요하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현대모비스가 있다. 각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총수 일가가 매입하면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기아차(17.24%), 정몽구 회장(7.11%), 현대제철(5.78%), 현대글로비스(0.69%) 순이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구성한다. 이에 현대차가 지난해 3월 현대모비스 모듈 사업과 AS 부품 사업을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분할・합병하는 방안을 냈다. 개편안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압박으로 철회됐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에 완승한 현대차가 올해 2차 개편안을 낼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 공식 발표가 없다.

최근 노사 무분규로 임단협을 마무리하고 2분기 영업이익도 1조2380억원으로 뛰어 대내외적 여건이 마련된 상황에서 사고가 터졌다. 개편안 발표는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등 후속 대책 마련에 우선순위가 밀리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정몽구 회장을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지분율 자체를 놓고 봐도 정 부회장(2.35%)은 아버지 정 회장(5.33%) 다음으로 많다. 5월 공정위가 정 회장 건강 소견서와 본인 자필 등을 인정하면서 현대차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의선 부회장 장인 정도원 회장이 지분 81.9%를 가진 삼표가 현대차 계열사로 편입되면 규제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의선 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제품엔 소비자 의견, 회사엔 외부 인재 태워

그간 정 부회장은 9월 취임 이후 파격과 소통 경영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는 과거 현대차가 고객보다 경쟁사에 집중해 어려운 시기를 보낸 점을 반성하고 지난 5월 ‘2019 서울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고객중심 경영을 약속했다.

고객 목소리는 제품에 적극 반영되고 있다. 2018년 출시된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팰리세이드는 넉넉한 실내공간과 다양한 편의사양, 가격대 성능비 조화로 역대 최다 판매 실적을 세웠다. 2분기에도 1만3000대를 팔아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다. 9월에는 2020년형 차량이 미국 비영리단체인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안전성 평가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정 부회장의 현대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다. 그는 지난해 9월 인도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 기조연설에서 새 시대 현대차의 기조를 이렇게 밝혔다. 선대 시절의 완성차업체를 벗어나 4차산업혁명기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야 살아남는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달라진 경영방식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1세대 경영진이 퇴진하면서 그 색깔은 한층 뚜렷해졌다. 순혈주의 타파와 조직문화 개선, 차량공유 시대에 발맞춘 투자 등이 이어지고 있다.

관행을 깬 파격 행보는 2016년 코나 발표회가 유명하다. 당시 정 부회장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제품을 설명했다. 앞서 제네시스 브랜드 선포식과 아이오닉 해외 발표회에도 직접 나타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사내 완전 자율 복장 제도를 도입했다. 그가 신년사에서 강조한 4차 산업혁명 시대 들어 ‘달라진 룰’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정 부회장은 해외 모터쇼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업계 동향을 파악하고 현지 기자들과 적극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격은 인사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현대차는 그룹 내 고령의 경영진을 50대 및 60대 초반으로 세대교체했다.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제철 부회장으로,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은 현대로템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기아차 연구개발(R&D) 담당 양웅철 부회장과 연구개발본부장을 맡던 권문식 부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 자문으로 위촉됐다. 대신 본부장 자리에는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선임됐다.

포스코 출신 안동일 전 포항제철소장을 현대제철 생산기술 담당 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순혈주의 타파도 이어갔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에는 닛산 최고성과책임자(CPO) 출신 호세 무뇨스 사장을 앉혔다. 2016년 현대디자인센터장으로 영입된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은 현대・기아차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푸조와 폭스바겐 그룹에서 대중차와 고급차, 슈퍼카를 디자인했다.

올해 현대・기아차 정기공채도 없애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매달 정 부회장과 임원들 간 '차담회(茶談會)'를 열고 특별한 안건 없이 소통한다. 직급체계도 사원~부장에 이르는 5개 직급을 매니저와 책임매니저로 줄였다. 임원 역시 상무와 전무로 압축했다.

나눠타고 빌려쓰는 공유시장에 미래 달려

정 부회장이 현대차의 변신을 이끌기까지 준비 기간은 짧지 않았다. 일찌감치 현대차 후계자로 정해진 정 부회장은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에 과장으로 입사한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를 다니다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재입사하며 경영에 본격 참여했다. 국내 영업본부 부본부장,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기아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자신처럼 실무부터 착실히 배우라는 정몽구 회장의 지침이었다.

이 때문인지 대외적으로 막내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정 부회장은 누나 3명을 둔 막내로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아끼는 손자였다. 정 부회장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청운동 본가를 지난 3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현대가(家)의 상징을 갖게 된 만큼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다. 오늘날 정 부회장의 승부욕과 격의 없는 소통은 이처럼 엄격한 집안 교육과 해외 유학, 사업 경험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의 막힘없는 파격 행보는 대대로 이어진 불도저 경영의 후속편이다. 할아버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1967년 현대차를 세우고 1974년 최초의 국산차 ‘포니’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현대차는 1985년 엑셀을 시작으로 소나타, 아반떼, 그랜저 등을 내놓으며 대중차 지위를 확실히 다졌다. 이후 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외환위기 이후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고 현대기아차를 세계 주요 완성차 기업으로 키웠다.

그 사이 해외 생산도 터키와 인도, 중국, 미국, 체코, 러시아, 브라질로 넓혀갔다. 2000년대 들어 가격보다 품질을 앞세운 결과 2010년 미국 포드를 제치고 세계 5위 완성차 기업에 올랐다. 2015년에는 고급차시장에 제네시스를 출격시켰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대중차 이미지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 공유 시대가 열리자 정 부회장은 현대차 3세 시대 기조를 스마트 모빌리티에 맞췄다. 지난해 국내 승용차 신규 등록은 전년보다 2.6% 줄었다. 30대는 4.4%, 40대는 4.9%로 두드러졌다. 자동차는 크고 무거운데다 비싼 운송수단이라는 인식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부회장도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올해 동남아 차량공유업체 그랩에 2억달러를 투자하고 인도 레브, 미국 마고, 호주 카넥스트도어 등과 협력하고 있다. 3월에는 인도 차량 공유업체 올라에 3억달러를 투자했다. 10월에는 러시아에서 차량 구독 서비스를 본격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가 일정 요금을 내고 차종과 이용 기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1월에는 국내에서 월 72만원짜리 구독 서비스 ‘현대셀렉션’을 내놓기도 했다. 서비스는 50명 한정으로 모집해 11월까지 운영된다. 소비자가 다양한 차량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차는 향후 구독 서비스 확장과 개별 차량 판매 수요 모두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차량공유 서비스 확대는 수소전기차 시장 확대와 맞물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규모의 경제를 키우려면 개별 판매가 아닌 차량공유 플랫폼을 통한 대규모 차량 공급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시장 판매 부진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폭탄 역시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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