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관에서 지난 5월 30일부터 3개월 넘게 열고 있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시리즈 : 절필시대’ 전시에서 월북화가 정종여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북한의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의 글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절필시대' 전시에서 정종여가 1965년 조선미술 6월호에 쓴 ‘전진하는 조선화’의 글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정씨는 글에서 “우리 당과 김일성 동지께서는 해방 직후인 1946년 7월에 우리 나라 미술 발전에 대한 방향과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였고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지도를 해주시었으며 미술가들의 창작 조건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온갖 배려를 돌려 주시었다”며 “당과 수상 동지의 이와 같은 지도와 배려에 무한히 고무된 우리 미술가들은 온갖 정영과 지혜를 참다운 인민적이며 당적인 미술 작품 창작에 바침으로써 시대와 혁명의 요구에 부합되는 회화 예술을 창조할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조선미술 1964년 4월호에 실린 ‘시대는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조형예술을 요구한다’에서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려 들어 가고 있는 저들의 운명을 구해 보려는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 소동이 격화되고 있는 오늘의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글로자들을 높은 계급 의식과 열렬한 혁명 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혁명의 종국적 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적극 고무 추동하여야 할 간절한 파업을 우리의 사상 사업 분야에 제기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시는 그의 작품 ‘모란’이 수록돼 있는 조선미술 1965년 8월호 표지를 소개하고 있는 가운데 이 표지에는 인민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월북 이후 그의 대표작인 ‘고성인민들의 전선월호’(1958)를 소개하는 책자의 다른 페이지에는 다른 북한 작가들의 작품인 ‘포항의 8용사들’이 실려 있다. 이 그림에는 한 명은 양 손에 수류탄을 드는 등 인민군 8명이 6.25전쟁 와중에 포항에서 연합군에 대항하고 있는 내용이 묘사돼 있다.
정종여가 제작에 참여한 1958년 사범전문학교 1학년용 도화공작 책자도 소개하고 있는 가운데 인민군대를 묘사한 판화 작품, 북한의 국장 등이 포함돼 있다. ‘김일성 선집’을 묘사한 책자 스케치의 ‘김일성 선집’ 글자에만 스티커를 붙여 글자를 노출하지 않았다.
이처럼 월북화가를 소개한다는 명목으로 김일성을 칭송하는 글의 내용까지 그대로 전시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하고 교류하면서 북한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은 윤범모 관장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담당 큐레이터는 “월북작가의 행적 전체를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고 검토한 결과 활동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 출판물에 갈음해서 보여주기로 했다”며 “조심스럽지만 북한에서 작가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담당은 “가감 없이 소개하고 작가 평가를 위한 논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소개한 것”이라며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전시 취지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름대로는 이 정도까지는 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전시했다”며 “’포항의 8용사’의 경우 옆 페이지여서 같이 보여준 것으로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