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거장(巨匠)이 사는 안양…소박한 작품 찾는 보물섬 여행

2019-08-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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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선생 '혼' 깃든 건축박물관엔 골 깊은 한국 건축사

강제추방의 아픔에도 동ㆍ서양의 美ㆍ디자인 고스란히 담아

안양예술공원 곳곳 예술작품

“안양은 OOO(으)로 유명하죠.”

얼마 전 만난 박영미 안양시 문화관광팀장은 “안양엔 무엇이 유명하죠?”라고 묻을 때마다 “안양은 OO가 유명하죠.”, “안양은 △△이 유명해요”라며 거침없이 답했다.

나중엔 웃음보가 터졌다. “팀장님, 안양은 모든 것이 다 유명한가요?”라고 반문했을 때도, 그는 “물론이죠. 안양은 유명하지 않은 게 없어요”라고 단언했다.

과연 맞는 말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안양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유원지, 그리고 학구열 넘치는 도시 정도였다. 하지만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의외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곳이 바로 이곳 안양이었다.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건축혼을 엿보다
 

박물관 별관 외벽 모서리에서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담은 ‘모자상’과 ‘개척자(pioneer)상’ 등이 보인다.[사진=기수정 기자]

안양은 우리나라의 1세대 건축가이자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김중업 선생의 건축혼이 깃든 지역이다.  

김중업 선생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 안양에서 그의 건축혼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 김중업 건축박물관이 있는 덕이다.

박물관 건물은 본래 김중업 선생이 직접 설계했던 유유산업 안양공장이 충북으로 이전하자, 그 자리를 안양시가 247억원에 매입해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유유산업의 의뢰를 받은 김중업 선생이 1959년 설계한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1960년 초 준공, 2006년까지 40여년간 운영됐다.

준공된 지 무려 60여년이 지났고, 용도 역시 공장이었지만 '소박한 예술미'를 갖춘 덕에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해 개관한 2014년부터 24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을 정도로 안양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195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를 계기로 유명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만난 그는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가 돼 3년 6개월간 그와 함께 일하며 현대건축의 기반을 닦았다.

르코르뷔지에의 제자로서 수학(修學)한 후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양공장 건축설계 의뢰를 맡아서일까. 유유산업 안양공장 곳곳에서는 서양 현대건축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본관 왼편. 마치 거미 다리처럼 생긴 기둥이 밖으로 설계돼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건축물의 외관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공장의 모습이 아니다. 본관 왼편에는 마치 거미 다리처럼 생긴 기둥 다섯 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이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는 "건물이 이 다섯 개의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해주는, 다시 말해 현대건축의 어휘가 명료하게 읽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기둥들을 건물 밖으로 빼낸 덕에 내부공간의 활용가치도 높였다. 

기둥뿐이랴.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밖으로 나와 있다. 통 시멘트 계단이 아니라 사다리꼴 판자형 발판이다.  60년 전만 해도 상당히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김중업 건축박물관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김중업 선생의 유품들[사진=기수정 기자]

주한프랑스대사관, 삼일빌딩 등을 설계한 김중업 선생.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70년대 와우아파트 건설을 비롯해 서울시 건축시책을 공개 비난했다가  삼일빌딩 설계비도 받지 못한 채 프랑스로 강제추방 당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성공회 회관, 외환은행 본관 등의 굵직한 건물들을 원정 설계해 나갔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그의 피나는 노력의 흔적, 그리고 설계했던 건물들의 모형을 엿볼 수 있다.

◆1억뷰 ‘대박’ 행렬 안양예술공원···전 세계인의 인증샷 명소로 우뚝
 

독일의 작가 볼프강 빈터와 베르트홀트 회르벨트가 설치한 작품 '안양상자집-사라진 탑에 대한 헌정'. 이 작품은 음료 상자를 재활용해 만든 작품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건축가 김중업 외에 유명세를 얻고 있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안양예술공원이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있어 오래전부터 수도권 주민들의 당일치기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던 안양유원지는 공원조성사업과 연계해 추진된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덕에 2006년 안양예술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덴마크 작가 예페 하인이 설치한 거울미로. 반짝이는 거울 기둥으로 이어진 원형 미로다. [사진=기수정 기자]

여기에 전망대, 1평타워, 하늘다락방, 물고기의 눈물이 호수로 떨어지다 등 공원 곳곳에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곳곳에 설치했다. 

국내 아이돌그룹 골든차일드와 태국 인기 록밴드 뮤직비디오를 이곳 안양예술공원에서 촬영한 이후 태국인 관광객이 주말 100명정도는 이곳을 찾는단다.
 

은 예술공원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당초 '보기 싫은 주차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해 이 작품이 탄생했다.[사진=기수정 기자]

최근 여행 트렌드인 '인증사진' 명소로도 입소문이 났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안양예술공원이나 #anyangartpark 등을 검색하면 게시물이 수천장에 달할 정도로 이미 국내외 관광객에게 인기 만점이다.

안양예술공원의 랜드마크 '안양파빌리온'도 유명하다.
 

안양 파빌리온 내부에도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지난 2006년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이곳 파빌리온은 현재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양예술공원에 자리한 작품들은 도슨트 해설을 통해 한낮에도, 야간에도 관람할 수 있다. 영어해설 투어도 가능하다. 

 

작품명 '용의 꼬리'[사진=기수정 기자]

전망대를 오르기 전 밑에서 촬영한 사진. [사진=기수정 기자]

작품명 '리.볼.버'. 삼성산 중턱에 설치된 투명한 원통 구조물 두 개를 교차해 만든 쉼터다.[사진=기수정 기자]

작품명 '리.볼.버'[사진=기수정 기자]

비스듬히 촬영한 거울미로.[사진=기수정 기자]

작품명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예술공원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당초 '보기 싫은 주차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해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사진=기수정 기자]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이란 제목의 작품은 예술공원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당초 '보기 싫은 주차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해 이 작품이 탄생했고, 인증샷 명소로 거듭났다.[사진=기수정 기자]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이란 제목의 작품은 예술공원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당초 '보기 싫은 주차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해 이 작품이 탄생했고, 인증샷 명소로 거듭났다.[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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