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교양 고전읽기 경시대회의 지정도서였던 국가론(Politeia)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읽고는 플라톤에 매료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지 2년이 지난 후였다. 플라톤은 능력과 인품이 뛰어난 철학자가 절대 권력을 갖고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했다. 가족과 사유재산을 포기한 철인이 지혜와 도덕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군인계급이 그를 보필하는 정치체제가 진정한 이상국가로 느껴졌다. 그런 나라라면 모든 국민이 요순(堯舜)시대처럼 정치따위는 잊어버린 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상국가의 허구성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90년대 초반, 신문사 국제부 기자시절이었다. 공산주의 몰락 후 동유럽의 정치상황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우리에게는 냉혹한 자본가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가 자신의 모국 헝가리에 대규모 투자와 기부를 시행한 자선사업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지 소로스는 런던정경대 시절 스승이었던 칼 포퍼(1902~1994)의 사상을 충실하게 실천하여 동유럽 민주화 정착에 큰 업적을 남겼다. 돈벌이 밖에 모르는 줄 알았던 펀드매니저를 이타주의자로 만든 칼 포퍼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공산사회로 발전해간다는 결정론적 유물사관에 끌려있던 필자에게 “인류 역사는 닫힌 사회(the closed society)와 열린 사회(the open society) 간의 투쟁의 역사”라는 칼 포퍼의 주장은 신선했다. 포퍼에 따르면 열린 사회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집합으로서 오류를 인정하고 사회구성원들의 합리적인 비판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사회라면 닫힌 사회는 국가가 설정한 이상과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개인의 삶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사회다. 포퍼는 “플라톤의 철인왕과 마르크스의 노동자 계급처럼 비판이 불가능한 절대선이 존재하는 정치체제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 독재체제로 변모하게 된다” 며 두 사람을 열린 사회의 적으로 규정했다.
1945년에 출판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플라톤의 이상국가와 히틀러의 나치즘 등 유럽의 사례를 들어 이상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이상주의를 표방한 과격하고 급진적인 걔혁이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시대적 공간적 상황에 따라 이유가 다양했으나 개혁 추진과정에서 주체세력의 과도한 이상주의적 정책의 집행이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상 실현에 장애가 되는 정적과 반대파를 인민의 공적(公敵)으로 몰아 숙청하거나 제거하였고 그에 대한 저항과 반발의 축적이 정권의 전복(顚覆)을 불러왔다.
1967년 캄보디아에서 탄생한 공산주의 무장세력 크메르루즈는 농민과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급진적 농지개혁을 실시해 농촌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한 끝에 1975년 정권을 탈취했다. 지도자 폴 포트는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 살해하는 것은 물론 공산사회에 건설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도시의 지식인층과 전문기술자들을 마구잡이로 처형해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세기의 가장 잔인한 정권으로 비판받았던 크메르루즈는 1979년 소탕되었고 이들의 끔찍한 만행을 담은 영화 <킬링필드>가 제작되기도 했다.
최순실게이트로 촉발된 시민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부는 여러 면에서 이상주의자의 특성을 보여왔다. 무엇보다도 386으로 불리는 학생운동권과 시민사회단체 출신의 정치활동가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입법, 사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대학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권변호사 출신인 사실이 그렇다. 또한 현 정권은 적폐청산, 주52시간 근무제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육성,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등 대통령선거 기간 내걸었던 공약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일본 정부가 2일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를 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한일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다. 현 정부는 이에 맞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라는 초강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선 반일민족주의를 내건 감성 마케팅이 통할는지 몰라도 국제 정치의 현실은 냉엄하다. 자기편이 아니면 모조리 ‘친일’프레임을 씌우는 편가르기는 국내 정치에서만 통할 뿐이다. 국제 정치에서는 실리와 국익, 힘이 곧 정의인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한다. 우리 정부가 제발 이번만큼은 이상주의의 선글라스를 벗고 현실주의의 길로 나서주기를 소망한다. 길게 보면 그편이 대한민국도 살고 내년 총선과 정권 재창출에도 유리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논설고문 건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