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해졌다. 조선 중기 천재 시인 허난설헌(허초희·1563∼1589)은 시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다.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은 조선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허난설헌의 시는 그의 바람대로 멀리 멀리 날아갔다.
허초희의 삶을 그린 창작 뮤지컬 ‘난설’이 오는 8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에서 공연된다.
허초희의 남동생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되기 전날 밤 누이와 누이의 스승인 이달을 회상하는 것으로 뮤지컬 ‘난설’은 시작된다.
허초희와 허균 그리고 이달은 시를 통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한다. “이 세상이 이 세상의 낮들이 내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니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검고 검은 붓으로 낮을 그렸다.”는 대사가 극의 줄거리를 잘 나타낸다.
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천재시인인 허초희의 호다. 옥경선 작가는 “난설헌은 스스로 부여한 시인의 이름이자 허초희가 시인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면서 그녀가 지향하는 시의 세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난설’의 이야기와 노래에는 허초희의 시가 듬뿍 녹아있다. 허초희가 지은 ‘견흥(遣興)’, ‘유선사(遊仙詞)’, ‘죽지사(竹枝詞)’, ‘가객사(賈客詞)’ 뿐만 아니라 허난설헌집의 유일한 산문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 등을 만날 수 있다.
옥경선 작가는 지난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허초희의 시는 매일 봐도 시시각각 색이 달랐다.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바라봤다. 작품에 소중하게 그려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시를 읽으면서 위로 받았다. 이를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투적이지 않은 대사와 이야기는 허초희의 시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관객들을 극에 몰입하게 한다. 주어진 환경을 이겨내는 허초희의 진취적인 모습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준다.
창작 뮤지컬 ‘난설’은 국악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묵화 같은 음악은 작품과 잘 맞아떨어졌다. 다른 작품들보다 곡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 논 다미로는 “그동안 해왔던 작업 방식에서 탈피해 미리 국악기 편곡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다. 피아노와 베이스 악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악기 단에 국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며 “장구나 소리북을 이용해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의 한국 전통 리듬을 도입시켰다. 만들어진 리듬 위에 25현 가야금이 화음을 만들고 대금과 해금으로 대선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배어있는 작품의 중심에는 배우들이 있다. 각 배역에 잘 어울리는 3명의 배우들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특히나 허초희 역을 맡은 하현지와 정인지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달과 6펜스’ 연극 ‘14人(in) 체홉’ 등에 출연했던 하현지는 “허초희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님께서 ‘허초희는 진취적이고 열정이 많지만 꿈을 접었던 여성이 아니라 시인으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열심히 작품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기쁨 연출은 “3명의 등장인물 모두 결핍을 갖고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서로를 만나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물들의 관계들을 관객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힘을 쏟았다”며 “허초희가 다채롭고 아름다운 그의 시 같아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흰 종이 같은 무대 위에 영상을 통해 허난설헌의 시가 쓰여지는 장면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만한 창작 뮤지컬이다. ‘쉬어매드니스’, ‘룸넘버13’, ‘언체인’ 등을 제작한 주식회사 콘텐츠플래닝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