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후임이 된 보수당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보수당 당수 선거 승리 연설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이행 의지를 거듭 밝혔다.
존슨 신임 총리의 성패를 좌우할 최대 과제는 단연 브렉시트다. 브렉시트 후폭풍에 영국에선 3년 새 총리가 두 번이나 교체됐다. 2016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총선 승리를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승부수로 걸었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찬성)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메이가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EU와 도출한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의 벽에 막히면서 결국 떠나게 됐다.
존슨 총리가 이들 전임자와 다른 건 그가 뿌리 깊은 EU 탈퇴파라는 점이다. 그는 2016년 국민투표 당시부터 브렉시트 운동에 앞장서면서 영국이 EU와 결별해야 경제·사회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전히 어영부영 EU에 남기보다는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가 낫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EU는 줄곧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강대강' 대치 속에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셸 바르니에 EU 측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는 이날 트위터에 "브렉시트 합의안 비준에 속도를 내고 질서있는 브렉시트를 달성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싶다"며 탈퇴 조건 재협상에 선을 그었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대해서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영국과 EU가 재협상을 한다고 해도 탈퇴일까지 남은 기간은 석달뿐으로, 공휴일과 여름 의회 휴회를 제외하면 실제 기간은 1개월 정도다. 탈퇴일 연기는 존슨 총리의 선택지에 없는 것 같다. 그는 "탈퇴 아니면 죽기(do or die)"라며 10월 31일 탈퇴를 못 박아왔다.
존슨 총리 집권에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남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선호해 온 시장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날 달러 대비 영국 파운드화 값이 27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을 정도다. 마이클 브라운 캑스턴FX 선임 애널리스트는 CNBC에 "존슨 총리가 '탈퇴 아니면 죽기' 기조를 고수하면 파운드화에 하방압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싱크탱크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전날 낸 보고서에서 10월 31일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40%로 제시하며,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이 경우 내년 국내총생산(GDP)이 2% 쪼그라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노딜 브렉시트보다 하드 브렉시트 가능성을 높게 본다. CNBC에 따르면 칼룸 피커링 베렌버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기본 시나리오로 하드 브렉시트를 꼽으며 그 가능성을 40%로 봤다. EU가 존슨 총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 셈이다. 피커링은 또 EU가 존슨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 요구를 거부하더라도, 브렉시트 온건파가 논의의 주도권을 잡으러 나서면서 올가을 의회에서 중대 결전이 치러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브렉시트 시한이 재연장되거나 조기 총선, 2차 국민투표 등의 선택지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보수당에서조차 '노딜'만은 막아야 한다는 온건파가 적지 않다. 더구나 다음 달 1일 예정된 브레콘 및 래드너셔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보수당이 예상대로 패배할 경우 연합정당인 민주연합(DUP)을 합쳐도 과반까지 1석밖에 여유가 없다. 의석수가 줄면 존슨 총리의 국정 추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티안 슐츠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또 영국 경제가 침체 위기에 놓이면 유권자들 사이에서 노딜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져 차기 정부가 EU에 강경하게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 지렛대가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슨 총리는 이번 주 안에 브렉시트 탈퇴파 중진 의원들로 신속히 내각을 구성한 뒤 26일부터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EU에 브렉시트 재협상 개시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