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석탑은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전북 익산시의 백제 관련 8곳의 역사 유적으로 백제의 왕도, 왕성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통한 문화 교류 등의 증거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지난 11일 전북 익산에서 만난 이동주 백제세계유산센터 센터장은 “백제 고유의 문화와 후백제 문화의 일본 문화에의 전수 등을 인정받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당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한성이 백제의 도읍이었던 기간이 더 길지만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 지역이 백제역사지구로 지정된 것은 후백제의 일본에 대한 문화 전수 등에 중점을 두고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20년 전 보수가 결정되면서 일제시대 붕괴를 막기 위해 부어진 시멘트를 일일이 떼어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동탑의 경우 새로운 석재를 사용해 세워지면서 원형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해체, 보수가 끝난 서탑은 최대한 원형을 살리고 재료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보수가 이뤄졌다.
지난 20년간 미륵사지 석탑 보수 과정에 참여한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동탑을 반면 교사로 삼아 서탑의 보수가 이뤄졌다”며 “동탑도 그 시대의 복원 기술 등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고 서탑도 보수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등 성과를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보수 과정에서 완전한 해체가 이뤄진 후 다시 조립됐다. 기존의 형태에 가깝게 보수하기 위해 붕괴돼 시멘트로 덮여 있던 부분은 기존에 있던 석재를 활용해 무너진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다. 안정성 확보를 위해 보수 과정에서 미륵사지 석탑은 기초석부터 완전한 해체와 함께 지반부터 다지는 작업도 이뤄졌다. 기존 석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석재와 티타늄 봉 등을 이용해 접합하는 기술도 활용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7세기 세운 사찰로 삼국시대 지어진 절로는 최대 규모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한 사리는 보수 이후 다시 석탑 내에 봉안됐다. 사리를 보관했던 금동사리호 등 유물은 국립익산박물관에서 공개하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인 충남 부여의 정림사지는 5층 석탑으로 유명하다. 석탑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곳이다. 6세기 백제 성왕이 사비성인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성의 중심에 정림사와 5층 석탑을 세웠다. 인근 백제문화단지에서는 사비성을 둘러 볼 수 있다.
관북리 유적은 발굴이 지속되고 있다. 인근의 한 발굴터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 등이 그대로 묻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발굴은 2034년까지 지속될 예정으로 인근 건물의 철거가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