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해고’라고 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를 내놓게 된 것에 대해서다. 순간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했다. 누구에게 고용돼 있었다는 것일까. 고용 주체는 다름 아닌 민주당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정의당에게 민주당은 사용자였다는 말인지. 정의당은 줄곧 “민주당 2중대가 아니다”고 강변해 왔다. 독자적 정당으로서 당연하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그동안 정의당을 2중대라는 말로 희롱했다. 정의당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표방한다. 그 가치에 충실해 선거제 개편, 민생 개혁법안, 추경안 처리에 목소리를 높였다. 공교롭게도 민주당과 궤를 같이했다. 하지만 민주당 2중대로서가 아니다. 지향점이 같았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정의당에 대한 한국당 공격은 졸렬하며 억지스럽다.
국회는 철저히 힘이 지배한다. 그 힘은 다름 아닌 의석수다. 의석수에 따라 1당, 2당, 3당이 결정된다. 국회직도 배분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받고 당선됐다. 그러니 의석수가 많으면 총합도 커진다. 국회에서 목소리도 꼭 그만큼 비례한다. 불합리할망정 현행 국회법이 의석수를 따지는 배경이다. 20석은 교섭단체 지위를 가르는 냉정한 기준선이다. 현재 교섭단체는 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이다. 이들 3당은 국회의사 일정을 독점적으로 행사한다. 소수정당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라고 하지만 현실 모르는 맹한 소리다. 정의당이 한때 민주평화당과 함께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란 교섭단체를 꾸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 사망으로 지위를 상실했다. 정치권은 정개특위 위원장을 정의당 몫으로 돌렸다. 다분히 정치적인 배려였다.
심 의원은 정개특위원장을 맡아 선거제 개편을 주도해 왔다. 골자는 소수정당에게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 제도는 거대 정당 횡포를 견제하는 장치다. 시행될 경우 소수정당은 의석수가 늘고, 거대 정당은 줄어든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사활을 건 이유다. 반면 한국당은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민주당은 미온적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단식을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불씨를 살렸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역시 선거제 개편을 담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온힘을 쏟았다.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득을 위해서다. 결국 선거제 개편은 소수정당과 거대정당 간 치열한 영역 싸움이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들 삶과는 거리가 멀다. 정의당은 의석수를 늘릴 목적에서 민주당과 정략적으로 동거를 한 셈이다. 그러다 파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해고’니 ‘배신’이니 하는 말은 부적절하다. 현실을 인식하고 차선을 모색하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정의당 우려에는 공감한다. 자칫 그동안 공들여온 선거제 개편이 물 건너 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위원장을 맡아 좌초시키려 할 것이다. 민주당 일부에도 부정적 시각이 있다. 시기도 불안하다. 선거제 개편안은 내년 1~2월 께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다. 본회의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정의당 입장에서 특위 위원장을 내놓을 경우 추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렇지만 정개특위 위원장을 정의당만 해야 한다는 발상은 접는 게 좋다. 대신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우선 민주당이 정개특위를 맡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그런 이후 패스트트랙 지정에 힘을 모았던 여야4당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사법개혁안은 어느 정도 틀을 갖췄다. 민주당이 손을 놓아도 큰 차질은 없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특위 위원장을 안배하되, 그것이 꼭 정의당이라고 고집할 이유는 없다. 정개특위 위원장이 정의당 붙박이는 아니다.
심 의원은 국회 정상화에 대해 “한국당의 집요한 떼쓰기가 관철된 것”이라고 힐난했다. 정개특위 위원장을 고집하는 자신들도 떼쓰기는 아닌지. 어떤 자리를 맡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일 잘하는 누나(심상정)’가 아니라 ‘밥 사주는 누나(나경원)’를 택했다며 한가로운 말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교섭단체 중심 국회운영은 싫든 좋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심 의원은 패스트트랙 지정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