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월드컵]'원 팀' 저력 보여준 '황금세대'…이젠 생존경쟁이다

2019-06-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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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 사상 첫 결승 진출 새 역사

막내 이강인이 형들 격려할 정도로 수평적 팀분위기

정정용 감독, 직접 '전술 노트' 나눠주며 선수와 소통

'골짜기 세대' 설움 극복…A대표팀 성장이 당면 과제


16일 새벽(한국시간) 폴란드의 우치스타디움.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주장 황태현(안산)과 골키퍼 이광연(강원)은 대열 맨 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입장했다. 경기장에 역사적인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막내 이강인(발렌시아)부터 정정용 감독까지 한목소리로 열창했다.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을 앞둔 결의였다.

리틀 태극전사들은 이미 한국 남자축구의 한 획을 그었다.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를 넘어 FIFA 주관대회 사상 첫 결승 진출의 새 역사를 썼다. 꿈의 목표였던 아시아 최초의 우승까지 이루진 못했지만, 밤잠을 설치며 전 국민들과 함께한 24일간의 감동의 여정은 충분히 값진 결과였다.
 

폴란드 우치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한 뒤 한국 정정용 감독이 이강인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정용호의 수평적 ‘원 팀’ 리더십

정정용호의 가장 놀라운 변화는 기존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수평적 리더십이다. 선수들의 입에서 “운동장에서 감독님을 위해 뛰자”는 말이 나올 정도니, 정정용 감독과 어린 선수들 사이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온다. 2살이나 어린 막내 이강인에게 형들이 직접 나서 ‘막내형’이라는 호칭을 쓰고, 이강인은 훈련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스피커에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튼다. 경기 도중 승부처에서 이강인이 형들의 얼굴을 붙잡고 격려하는 모습은 적잖은 충격까지 준다.

학연·지연이 뿌리 깊은 한국 축구계에서 정 감독은 ‘비주류의 혁명’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주류 대학 출신도 아니고 국가대표로 뛴 경험도 없는 정 감독은 학구파로 살아남았다. 어린 선수들에게 ‘지시가 아닌 이해’, ‘자율 속의 규율’을 강조한 확고한 지도 철학은 U-20 대표팀에 녹아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 감독이 직접 메모해 선수들에게 나눠준 ‘전술 노트’다. 선수들은 상대 팀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적용한 전술‧전략이 적힌 이 노트를 일명 ‘마법 노트’라 부른다. ‘정정용의 아이들’은 마음과 마음으로 공감하며 전술까지 소통하는 리더십을 통해 그 누구도 이르지 못한 최고 성적을 냈다.

정 감독은 “이해가 바탕이 되고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으면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다 드러낼 수 있으리라”고 말했고, 이강인은 “못 잊을 감독님”이라고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 감독의 말을 인용해 “멋지게 놀고 나온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축사를 전했다.
 

역사적인 U-20 월드컵 결승 무대에 선 정정용호 선발 출전 선수들. [연합뉴스]


◆‘골짜기 세대’의 ‘황금 세대’ 진화

대회 개막을 앞두고 이강인이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라고 말했을 때 젊은 패기를 높게 샀을 뿐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대표팀의 최고 스타가 막내 이강인이었다. 정정용 감독도 무명의 지도자였다. U-20 월드컵조차 6월 A매치 기간과 겹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정용호는 ‘골짜기 세대’로 불렸다. 2017년 국내에서 열린 대회 당시 이승우(엘라스 베로나)와 백승호(지로나) 등 특급 유망주들이 대거 나섰으나 이번 대표팀은 이강인을 제외하면 이름값이 크게 떨어졌다. 선수단 전체 21명 중 해외파는 4명에 불과했다. K리그 소속만 15명이었고 이 가운데서도 2부리그 소속이 6명, 대학 선수도 2명이 포함됐다. 조영욱(서울)과 조세진(수원)을 제외하면 프로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선수가 수두룩하다. 7경기 내내 눈부신 활약을 펼친 골키퍼 이광연도 그중 한 명이다. 또 이강인과 투톱 공격수로 활약한 오세훈도 2부리그 아산 무궁화에서 뛰고 있다.

그러나 ‘골짜기 세대’라는 말은 폴란드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살아남은 한국은 16강(일본), 8강(세네갈), 4강(에콰도르)전을 치르면서 무섭게 진화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연 ‘황금 세대’라는 새 수식어가 붙었다.

새 역사를 쓴 ‘황금 세대’의 당면 과제는 기대에 발맞출 A대표팀으로의 성장이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19~20세의 선수들은 한 번 사기가 오르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도 모를 때이지만, 풀이 죽으면 성장이 멈추기도 할 시기”라고 말했다. 스스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정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앞으로 한국 축구에서 5년, 10년 안에 자기 포지션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확신했다. 오세훈도 “이번 대회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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