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갑질 횡포] ③ '자존감 도둑' 방송국…"시청률 따라 대우도 바뀌어"

2019-06-15 09:09
  • 글자크기 설정
"갑(甲)질이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 저래라하며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뜻한다."

최근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대표적 사례다.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과 이해욱 대림기업 부회장이 운전기사를 폭행한 사건도 이어졌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자택 인테리어 공사 도중에 직원들에게 내뱉은 폭언은 충격적이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여승무원에 대한 갑질 논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관련 보도는 '갑질'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를 보여줬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을 뒤집는 비인간적, 비도덕적인 갑질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대중들은 공분했다. 갑질이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집, 학교, 직장 등에서도 '갑질'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직급, 연공서열, 소속 등을 통해 '갑'과 '을'로 서열이 나뉘기 때문이다.

갑질 논란은 이제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예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만의 리그'라 불리는 연예계에서 '갑질 횡포'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경제는 연예계 속 갑질 횡포에 고통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러 관계자를 만났다. 하지만 현직에 있는 관계자들은 "부담스럽다",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두렵다"며 입을 모았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연예계 갑질에 관해 인지하고는 있고, 문제점 역시 알고는 있지만 나서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소수의 관계자와 한때 연예계 몸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해 준 전직 연예계 관계자들은 "이 인터뷰로 무엇이 달라지겠냐"며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그들은 "이제는 갑질 횡포가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의 바람을 담아 무거운 마음으로 '연예계 갑질 횡포'를 시리즈를 엮어 본다.

연예계 만연한 '갑질' 문화 [사진=게티 이미지]


"나이, 연차, 프로그램의 인기는 곧 권력이에요. 그로 인해서 갑과 을이 나뉘기도 하고 무시하고 또 당하기도 하죠."

방송계 부푼 꿈을 안고 있었던 K씨는 방송작가로 시작, FD(무대 감독 Floor Director)로 분야를 넓히며 방송국에 발붙여왔다. 그러나 여느 제보자들처럼 '갑질'을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 방송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시작은 방송작가였어요. 학교에 다니던 도중에 참여한 거라 더 대우를 못 받았죠. 일은 다 해놓고 프로그램에 이름 한 줄 실리지 못했으니까요. 6개월가량 일했는데도 돈 한 푼 받지 못했어요.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 모두 제 사비로 충당했죠."

결국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K씨는 제작진에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온갖 폭언과 무시 발언이었다. K씨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진저리가 나더라고요.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어서 돈도 안 받고 그만뒀죠."

방송계 '쓴맛'을 본 K씨지만 어린 시절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 관련 학과를 졸업한 K씨는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가게 됐고 "도저히 방송작가로는 돌아갈 수 없어 FD로 새 출발 했다"고 털어놨다.

"FD라고 뭐 달랐겠어요? 방송국이며 선배들 갑질은 여전했죠. 연차 높은 선배들은 인사도 안 받아주고 후배들 기죽이기 일쑤고, 방송국은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아예 없는 취급 했어요."

K씨는 "FD는 소속된 공간이 없기 때문에 더욱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섭외, 자료조사 등을 할 때도 방송국 내 빈곳을 찾거나 밖으로 나돌아다녀야 했다는 것이다. K씨를 비롯해 많은 FD는 쉬는 시간을 보낼 공간이나 작업을 할 장소도 없었다. 심지어는 밤낮 가리지 않고 FD를 불러댔으며 오랜 시간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이 아예 없어요.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야하죠. 퇴근 했는데도 'OO야 다시 와라' 하면 군말 없이 가야했어요. 대부분의 일이 밤에 이뤄지고 또 밤샘 근무로 이어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정말 힘들었죠. 한껏 예민해진 상태니, 선배들은 어린 후배들에게 기분을 풀고요. 인격모독이나 폭언은 예삿일이었어요."

보상 없는 노동과 선배들의 폭언, 인격모독을 겪으며 K씨는 점점 쇠약해졌다. 그러나 방송계에 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쓰린 속을 달랬다.
 

자존감까지 짓밟았던 연예계 '갑'들···[사진=게티 이미지 제공]


<연예계 갑질 횡포> 취재를 진행하며 인터뷰이(interviewee)들은 공통으로 열악한 근무환경, 열정페이, 업계 관계자들의 폭언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 같은 '갑질'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 인터뷰이들은 "굴레를 끊을 수 없다"며 입을 모아왔다.

"갑질에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은 없죠. 방송가는 학연, 지연, 경력, 연차 등을 중요시해서 반항하거나 목소리를 내려는 이들이 없어요. 한 번 찍히면 다시 일을 시작할 수가 없어요."

K씨는 방송국에서 일하며 윗사람들에게 고분고분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윗사람들의 심사가 뒤틀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K씨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K씨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은 거의 장사꾼이었죠. 돈 되는 장사만 하려는 거 같았어요. 잘 되는 프로그램은 PD부터 막내까지 밀어주고 껌뻑 죽으면서 조금만 성적이 안 좋거나 삐끗하면 가차 없이 폐지 시키고 망신을 줬죠. 막내 스태프들은 이중으로 고통받을 수밖에요."

K씨는 방송작가 A씨와 조연출 B씨처럼 금전적인 문제, 선배들의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방송국을 떠났다. 무엇보다 K씨를 괴롭혔던 건 "성적(시청률)이 안 좋다"는 이유로 괄시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행사하며 스태프들의 자존감을 짓밟은 방송국의 행태였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일도 힘들고, 돈도 못 벌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버텨온 건데···. 시청률 때문에 무시 받고, 욕을 먹으면서 자존감도 많이 깎였어요."

K씨는 현재 방송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업계에 관한 애정과 열정이 컸던 만큼 실망감 엄청난 것 같았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떠나왔고 아직도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앞으로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를 응하게 됐어요.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하고 기대는 해요. 씁쓸할 따름이에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