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책에서 책으로'③]강남좌파를 경멸한 미제스가 한국을 본다면

2019-06-1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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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쪽의 책 '인간행동', 빈곤 경험없이 지식유행으로 사회주의를 습득한 이들을 개탄

[말년의 미제스.]



[정숭호의 '책에서 책으로'③] 미제스의 저작

최대한 행복해지려는 게 인간행동의 궁극적 목표
누구도 다른 이의 행복 추구에 간섭할 수 없다


“스위스 쥐라 지방 주민들은 밀 재배보다는 시계 제조를 선호한다. 그들에게 시계 제조는 밀을 얻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캐나다 농민들에게는 밀의 재배가 시계를 얻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로 시작되는 미제스(Ludwig von Mises, 1881~1973)의 <인간행동 Human Action>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체제만이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작은 글자가 빽빽한 1700쪽의 이 책(박종운 번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의 내용을 제대로 줄여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능력은 부족하고 지면은 좁다. 책의 서문에서 몇 줄 옮기는 게 내가 받은 감동을 전하기 쉬울 것 같다.

“인간이 행동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불편을 줄이고 행복해지려는 욕구 충족이다. 오로지 자신의 가치판단만이 무엇이 더 큰 만족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며, 그 외의 다른 기준은 없다. 이 가치판단은 사람에 따라, 또는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다르다. 무엇이 동료 인간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판단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택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결정을 좌우한다. 모든 인간의 가치는 선택 대안 앞에 놓인다. 모든 목적과 수단은 한 줄로 정렬되어 있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을 제쳐 두는 결정에 따르게 되어 있다.”

“자유주의 옹호자들은 법 아래서의 평등을 위해 싸우지만 인간이 불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법 아래서의 평등은 그것이 불평등하게 태어난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에 가장 잘 봉사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그것은 누가 공직을 맡을 것인가는 투표자에게 맡기고, 누가 생산 활동을 지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맡긴다.”

미제스는 유대인이다. 일찍부터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반유대주의가 득세를 시작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는 교수가 되지 못했다. 비유대인 제자들은 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강사로 머물렀다. 히틀러의 등장으로 유대인 박해가 극심해지자 스위스를 거쳐 건너온 미국에서도 배척당했다. 이번에는 이론 때문이었다. 그의 자유주의 이론은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핵심인 당시 미국의 뉴딜정책을 지지하는 케인스 경제학자들의 기준에는 ‘극단적’이자 ‘이단적’인 것이었다. “화폐도 기업이 발행해야 한다. 가장 좋은 화폐,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거나, 더 많은 이자가 나오는 화폐를 발행토록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극단성과 이단성을 대표하는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비트코인 등 수많은 가상화폐가 등장한 사실은 “사회주의는 엉터리다. 공산주의는 반드시 망한다”는 그의 젊을 때의 ‘극단적 예언’처럼 훗날을 내다본 ‘예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많은 지식인들의 뇌를 사회주의가 점령했던 당시 그의 이런 주장은 먹히지 않았지만 결국 공산주의는 망하지 않았나.
그는 공산주의 외에, 전체주의, 집단주의, 국가주의, 일원주의 등 자유주의가 아닌 것, 반자본주의적인 모든 것에 대해 경보를 울리려고 1948년 <인간행동>을 썼으나 큰 주의를 끌지 못했다. 공격적이고 신랄한 그의 말투 또한 외면을 불러온 이유였다.

이런 그에게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르지 않은, 즉 시장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 어떤 이론서보다 더 절절이 담은 소설 <아틀라스>가 대성공을 거두자 저자인 에인 랜드가 고맙고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랜드 역시 러시아 태생 유대인으로 러시아 혁명 이후 들어선 소련 정권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처지였다.

미제스는 <아틀라스>가 나온 이듬해(1958년) 랜드에게 “<아틀라스>는 단순히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에 대한 종합 분석이다”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낸다. 미제스가 말한 ‘악’은 경제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의 간섭, 지식인의 위선 등이다. 자신이 수십 년 걸려 해온 일을 한 권의 소설로 해낸 스물네 살 어린 ‘여류작가’의 지성과 글에 반해 짧지만 모든 찬사를 담은 팬레터를 보낸 것이다.

<인간행동>은 두껍다. 고맙게도 미제스는 얇고 쉬운 책도 쓰고 연설집도 남겼다. <자본주의 정신과 반자본주의 심리(김진현 역, 한국경제연구원)>, <자유주의(이진순 역, 한국경제연구원)> 같은 책이다.

미제스는 ‘강남좌파’를 경멸했다. 연설집인 <자본주의 정신과 반자본주의 심리>에서 미제스는 빈곤을 경험하지 않고 성장한 사람들이 사회실상을 거짓되게 설명, 해석하는 것을 개탄했다. 이들은 당시 지식인 사회의 유행에 따라 사회주의 이론을 먼저 접한 상태, 즉 이미 ‘사회주의에 오염된’ 상태에서 사회를 보았기 때문에 그 분석은 오류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묘사한 불쌍한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부정한 사회주의적 발상 때문이라는 걸 모르거나 무시한 결과라는 말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로 인해 가능해진 대량생산 덕분에 왕정시대, 귀족시대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예전보다 월등히 잘 살게 됐음은 망각하고 오히려 자본주의 때문에 삶이 나빠졌다고 엉터리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미제스는 또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성장한 환경, 굶주리고 헐벗은 채 자라난 자신의 이야기를 사회주의적 소설이나 희곡으로 ‘상품화’해서 예술적, 경제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경멸했다. 자본주의 덕분에 성공했음에도 사회주의를 찬양하자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의 작품은 본질상 거짓이며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성인의 표상이 되고 그들의 작품이 인기를 얻는 것을 미제스는 걱정스러워했던 것이다. <아틀라스>의 출간과 성공을 축하한 미제스에게는 이런 생각이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우리만 옳다는 헛된 자만심, 여기서 비롯된 개입과 간섭, 이로 인한 경제 부진, 삶의 피폐, 미래에 대한 걱정 …. 이 정부 들어서 깊어진 여러 현상 때문에 <인간행동>에 대한 나의 감동도 깊어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고 할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선택의 역사다, 지금 우리 모습은 그 선택의 결과”라는 미제스의 주장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까지 올해의 나의 ‘인생책’이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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