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세상을 보는 세 개의 눈

2019-05-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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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숨 쉬고 발 딛고 사는 이 땅, 지구다.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75.3억 명(2017년 세계은행 기준) 인류는 세계라는 추상적인 시공간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지지고 볶고 살아간다. 지구와 우주, 세계 즉 세상을 보는 관점은 저마다 다를 터. 그 관점에 따라 자신이 경험하는 공간, 사람 별로 제각각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두 달 '인생 역대급' 책 두 권과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읽고 봤다. 3편 제각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저자와 감독의 관점이 들어 있다. 
 

[사진=다른 제공]

◆‘거인들의 세계’를 보는 눈-자이언트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돈과 주먹, 정보다. 이걸 현대세계에 점잖게 적용·표현하면 금융과 군사력, 미디어가 된다. 4월 출간된 <자이언트>(저자 피터 필립스)는 이 세 가지로 세계를 장악한 글로벌 파워엘리트 389명의 이름과 국적, 심지어 재산까지 파악한 명단을 공개했다. 이른바 TCC, ‘초국적 자본가 계급(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의 핵심 인물들이다. 세계 인구의 0.000005%, 389명의 자이언트(거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의 당사자이자 대변인, 실제 액션을 취하는 핵심 행동대원들이다.

저자는 먼저 1조 달러(한화 1184조 2천억 원), 대한민국 2019년 예산안(469조원)의 두 배를 훨씬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준으로 TCC를 구체화한다. 1조 달러 이상의 자본을 운용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17개 사를 꼽고 각 회사의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이사회 이사 199명을 한 명 한 명 명단에 올린다. 블랙록(이하 운용자산 5.4조 달러), 뱅가드그룹(4.4조 달러), JP모건체이스(3.8조 달러) 등인데, 이 17개 금융사들은 모두 41조 1천억 달러(4경8703조원) 이상을 운용한다. 2017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 총액(1조5302억 달러)은 그야 말로 ‘새 발의 피’다.

이어 G30과 삼극위원회 집행부 85명, 대서양위원회 집행부 37명, 세계경제포럼 이사회 22명, 빌데르부르크회의 운영위원회 32명, 민간 군사기업과 미디어 기업 경영진 14명으로 명단은 완성된다.

이들은 세계 자본주의 중추 조력자로, 초국적 자본가 계급의 파워 엘리트들에게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다.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그들 자신이기도 한 초국적 자본가 계급을 보호하는 거다.

이들 모두는 국가보다 강하다. 긴밀히 조직된 초국적 자본가 계급의 힘은 국가 권력을 압도한다. JP모건체이스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한 마디로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우리 비행기를 운전하는 조종사”라고.

저자인 피터 필립스 미 캘리포니아 소노마주립대 정치사회학 교수는 “가난, 전쟁, 기아, 대중소외, 미디어의 거짓 선전, 환경 파괴와 같은 인류의 위기가 이들로부터 시작됐다”며 “인류라는 종 자체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경고한다.

<자이언트>의 눈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누가 지배하는 지 적나라하게 본다
 

[사진=김영사 제공]

◆사실에 충실한 눈으로 보는 세상-팩트풀니스
<자이언트>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1% 대 99%’로 나뉘어졌다. 세상은 둘로 나뉘고, 그 둘의 투쟁, 쟁투가 변증법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분법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 그 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지금은 맞고 그 땐 틀렸기도 한다.

아시아·아프리카 오지를 돌며 공중보건의 활동을 했던 의사이자 통계 전문가, 사상가, 사회활동가인 고(故) 한스 로슬링 박사의 유작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그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지 말자고 강력히 권한다.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저자의 신념이 ‘사실충실성’에 고스란히 녹아 들었다.

그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13가지 문제’로 시작한다. 평균 정답률은 불과 16%, 침팬지가 정답을 무작위로 고를 때의 33%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간극, 부정, 직선, 공포, 크기, 일반화, 운명, 단일 관점, 비난, 다급함이라는 10가지 본능, 사람들은 이 어리석은 본능 때문에 자기가 ‘느낀’ 것을 사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세계인을 소득 수준에 따라 ‘4분법’으로 구분한 것. 하루에 2달러를 벌면 1단계, 2~8달러는 2단계, 8~32달러는 3단계, 32달러 이상은 4단계로 보면 세상의 양극단은 그리 첨예하지 않다. 극빈층인 1단계는 세계 인구 70억 중 10억 명이 채 안 된다. 중간 단계인 2, 3단계에 각각 30억, 20억 명이, 가장 상위인 4단계는 한국을 포함해 10억 명이다. 세상은 양극단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눈’을 갖게 된다.

또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가리는 숫자와 통계, 비율의 허상도 지운다. 2009년 신종플루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었을 당시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 수는 5천여 명이었는데, 같은 시기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는 6만 3천여명이였다. 저자는 미디어가 부정적이고 극적인 면을 주목해 보도하기 때문에 신종플루보다 죽을 위험이 훨씬 높은 결핵의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일갈한다.

2016년 태어난 전세계신생아는 1억 4100만 명, 사망한 아이는 420만 명으로 신생아사망률은 3%다. 1950년 신생아 9700만 명 중 사망자 1440만 명, 신생아사망률 15%. 아직도 한 해 수많은 신생아들이 죽지만 66년만에 15%에서 3%로 줄어든 상대적인 수치는 보도하지도 않고, 보려고도 안 한다. 절대 수와 비율의 착시로 사람들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뉴스는 항상 극적인 사건만 보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필자는 고개를 숙인다.

“세상은 비록 느리더라도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산다”며 저자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지조차 모르고 세상을 봐온 사람들을 향해 죽비를 내려친다.
 

[넷플릭스 제공]

◆우주에서 지구를 보는 눈-원 스트레인지 락
요즘 며칠 넷플릭스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만든 10부작 과학 다큐멘터리 <원 스트레인지 락>(One Starange Rock·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에 푹 빠졌다. 지구를 ‘이상한 돌 하나’라고 적은 이 시리즈는 ‘인생 다큐’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생성과 작동의 메카니즘, 우주의 신비, 생명에 대한 경외 등을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듯 빼어난 영상으로 담았다. 태국의 백만 개 불상, 멕시코의 수중동굴, 콩고의 용암 화산, 베네수엘라 앙헬 폭포, 볼리비아 수직 절벽, 지구의 방어벽 등 눈 뗄 수 없는 명장면의 연속이었다.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기이하고 경이롭고 독특한 행성인 지구를 탐험한 시간은 총 10시간. 1회당 1시간씩 지구를 바라보는 열 가지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아 그렇구나’라는 찬탄이 절로 나온 대목은 우주비행사들의 인터뷰였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지켜 본 몇 안 되는 인간인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서 보낸 시간, 자기의 집인 지구를 그 밖에서 봤던 놀라움에 대한 생생한 육성 인터뷰는 지구에서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665일을 우주에서 머문 페기 윗슨은 “우주에 머물다 보면 지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죠. 또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가 있죠”라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배우 윌 스미스는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건 관점”이라고 읊조린다.
 

[HBO 왕좌의게임 시즌1.4화 캡처]

그렇다, 세상을 보는 관점, 그 눈이 관건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포착하는 관점, 사실충실성으로 무장한 관점, 지구라는 기적과 자연의 소중함과 생명의 신비를 보는 관점. 이 3개의 관점을 두루 섞는다면 세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너그럽고 제대로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거다. 융·복합적인 관점에서 세상를 다르게, 새롭게 볼 수 있는 3개의 눈을 장착하자.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눈 세 개 달린 세눈박이 까마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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