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개국을 제외하고 논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북한 비핵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정책을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노련하면서도 실용주의적인 외교를 선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과 북한의 신뢰관계, 생각보다 약해...한국에 기회"
김흥규(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교수): 일부는 중국 전략에서 한반도가 ‘핵심적 이익’ 지역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아랫단계인 ‘중대 이익’인데 핵심적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단계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중국이 반드시 무력을 통해 북한을 지켜야하는 건 아니다. (북·중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하면 중국은 한반도가 그들에 적대적인, 혹은 비우호적인 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 시대에는 중국이 발전도상국이라는 자아정체성에서 새로운 강대국이라고 하는 국가적 정체성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또 중국은 2050년에 세계 최강의 국가로 부상한다는 의지도 있다.
최근 중국의 군사계획을 보면 한반도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대폭 제고했다. 한국에는 명과 암 두가지 측면이 있다. 북한을 억제하는 역량이 높아져 북한이 행동하면서도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동시에 중국은 북한이 연명을 하게 해주지만 소위 말하는 강성대국이 되는 길은 열어주지 않는다.
북한의 냉전시기 외교를 보면 중국과 소련 사이의 시계추 외교였다. 21세기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런 외교를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중국의 신뢰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전략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정권을 계속 연명하게 해주겠지만 중국의 이익에 반해 북한이 핵문제를 갖고 지나치게 도발하거나 미국과 결합해 (중국을) 위협하는 상황은 방지할 것이다.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고 연명을 하게 해주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핵에 대한 중국의 반대는 분명하다. 대신 우리와 중국이 각자 생각하는 타임프레임, 세부적 조건들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성출(한미연합사 전 부사령관):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영향력을 행사한 건 분명하지만 미세한 변화가 많았다. 미·중관계가 협력이냐 갈등이냐에 따라 영향력의 농도는 다르다. 미·중관계가 협력일 때는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서 미국 및 주변국의 의도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했다. 그러나 미·중 갈등 구도가 형성될 때 중국은 북한의 잠재적인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되, 북한이 미국 중심의 구도로 가지 않게끔 적절하게 통제하는 영향력만 행사했다. 중국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앞으로도 미·중관계의 구도 속에서 일관되게 예측하기 어렵다.
◆한·미 동맹 틀 위에서 중국, 일본, 러시아 다자관계 활용해야···
이재호: 러시아도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가 최근 동북아 다자안보 구도의 필요성을 암시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우월 지배 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다자 접근을 선호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다자안보 구도를 또 끌고 나온 상황이 동북아 질서와 한국에 어떤 함의를 주는지 말씀해달라.
김흥규: 러시아가 동아시아에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러시아는 가장 적은 비용을 투자해 동아시아에서 미국 중심 동맹구도를 흔들 수 있는 방법은 다자안보 구도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현재로선 미국에서 오는 엄청난 압박을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자안보가 효과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다자안보 문제 제기는 러시아와 북한에 시의적절한 방법이다. 문제는 러시아가 북한이 기대하는 엄청난 지원, 예를 들면 북한의 핵무장 방조 및 경제직 지원을 제공하느냐인데 이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이재호: 북한 핵문제와 4강외교가 중첩되면서 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한·미동맹은 튼튼히 유지돼야 한다. 한·미동맹 틀 위에서 중국, 일본, 러시아와 북핵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 구조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4강이 놓인 구조의 힘 속에서 한국 외교안보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말해달라.
이성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또 경제적 가치, 북한의 핵 문제가 우리의 안보상황을 위기로 만들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외교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지금보다 훨씬 더 외치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 과거에 비해 외교안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인데 이에 대한 대처 능력, 외교인재 등은 부족하다. 우리의 외교전선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전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김흥규: 대한민국 그리고 한반도에서 사는 우리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낀 상태였다. 양쪽으로부터 압박과 영향을 받았고, 국론은 늘 분열됐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 안보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우리가 전략자산으로서 어떻게 한·미동맹을 이용할 것인가, 또 미·중 경쟁 속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까 하는 문제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외교와 안보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거기서 가용할 수 있는 자산, 또 움직일 수 있는 공간들을 냉정하게 계산하면서 같이 국력을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의를 계속 해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