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설계해 온 츠푸린(遲福林·68) 하이난(海南) 개혁발전연구원장의 이 같은 언급은, 중국인들의 최근 소비 패턴 변화가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 위기와 기회로 동시에 몰려오고 있음을 단적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중국 경제가 미·중 무역 갈등으로 단기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개방확대와 질적 성장으로 거대한 성장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연말과 연초 중국의 3대 경제 성장 엔진으로 불리는 투자, 소비, 수출 지표가 악화되자 세계 경제는 비관론에 뒤덮였다. 일각에선 미국과의 무역 전쟁 장기화와 중국 경제 위기의 잠재적 '뇌관', 즉 부채와 부동산거품 등을 거론하며 올해 중국 GDP가 2%대 성장에 그칠 수 있다는 극단론까지 내놓았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들어 미·중간 무역 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고 중국 경제의 흐름과 관련해서도 당시 비관론자들의 우려가 지나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마디로, 중국 경제는 성장동력 불확실로 인해 단기적으로 하방 압력에 직면해있지만, '올해 경기가 급격하게 추락해 세계 경제도 동반 침체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중국발 위기설은 한낱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흐름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면 충돌로 치닫던 미·중 무역 전쟁이 일단 고비를 넘겼고, 경기 후퇴에 대응해 내놓은 중국 당국의 각종 부양책(대규모 감세 등)의 '반짝 효과"에 힘입어 잠정적으로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주요 경제지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소비심리의 회복은 성장률 회복의 전조이다. 덕분에 중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도 상당히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 통계국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1~3월 GDP 성장률은 6.4%로, 지난해 4분기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1분기 5%대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깜짝 성장'으로, 이제 중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달 1~4일 중국 노동절 연휴기간 중 여행을 떠난 인파는 2억명에 육박하고, 이에 따라 지난해보다 16.1% 증가한 20조원의 소비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신화통신은 "올해 노동절 연휴 때는 자녀들과 함께 현장 학습 방식의 가족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많았다"며 "이를 통해 문화·레저·외식 소비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츠 원장은 중국이 '소비 신세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인들의 수요가 과거 식품, 의류, 생필품 등 물질형 소비에서 교육, 의료, 엔터테인먼트, 관광, 문화와 같은 서비스형 소비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다며, 서비스 산업 중심의 중국 경제구조 전환은 이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가진 한국 기업에게도 기회라고 했다. 특히 중국의 인구 고령화로 '실버경제'에 대한 거대한 투자공간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4억 인구의 거대한 중국에서 소비의 GDP 성장 기여도는 2010년 44.9%에서 지난해 76.2%까지 올랐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78년 가계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 즉 엥겔지수는 64%였다. 이젠 이 지수가 선진국 수준인 30% 이하로 내려가면서, 중국인들의 소비 품목과 성향도 획기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외 개방이나 자유무역 지대 확대 정책도 과거 상품 시장 중심에서 금융과 서비스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 소비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서비스 개방 속도에 맞추어 한국도 적절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서비스형 소비가 크게 늘고 있지만, 아직도 규제 장벽이 높아 외국 기업들의 진출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은 의료 및 헬스케어, 온라인 교육 분야에서 합자 형태로만 중국에 진출이 허용되는 규제에 묶여있다. 지적재산권 등 법적 보호장치는 아직도 미흡하고, 방송이나 문화콘텐츠 분야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계속 애를 먹고 있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지난해 3월 한·중FTA 서비스·투자분야 후속 협상을 개시한 이래 올해 3월까지 제3차 협상을 진행했다. 우리 정부는 관광, 문화 콘텐츠, 게임, 금융, 법률, 의료 등에서 중국의 추가 개방을 선점하고 투자보호장치를 마련하며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촉진한다는 목표이다. 때마침 미·중 무역 협상까지 조만간 타결되면, 중국 서비스 시장의 제도적 투명성이 높아지고 지적재산권 보호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우리의 관련 기업들도 중국의 규제 장벽에 움츠러들기보다는 더욱 경쟁력을 키우면서 중국시장에서의 기회를 모색할 때이다.
츠 원장은 “한·중 경제는 경쟁성보다 상호 보완성이 더 크고, 중국 소비 구조 업그레이드와 수입 확대 정책은 한국에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 한·중서비스 무역 자유화가 실현된다면 중국은 1~2%포인트, 한국은 2~3%포인트 정도 GDP 성장 기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협상이 막판 조율에 들어간 가운데, 중국 당국은 44조 달러에 달하는 자국 금융 시장을 추가 개방한다며 미국에 유화의 손짓을 보냈다. 미국 역시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고 있는 보복관세를 즉각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 폭을 크게 줄이기 위해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대폭 확대하고 기술유출 문제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에도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시장 개방 확대를 통해 무엇보다도 내수소비 진작과 안정적인 대외환경 조성 효과를 노리고 있다. 중국의 개방 확대는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이다. 관세율 인하, 해외직구 활성화 조치 등에 힘입어 소비재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수출 증가 잠재력은 높아질 것이다. 반면, 중국의 시장진입 문턱이 낮아지면서 우수한 외국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어나고 우리 기업들과의 경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는 네거티브 리스트 이외의 분야에서 외국 기업과 중국 기업이 동등한 조건에서 투자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외상투자법(외국인투자법)이 통과됐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의식한 조치이기는 하나, 중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공정한 투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부각시켰다. 올 들어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정부가 과감한 규제 철폐와 기업 투자 환경 개선 등 개혁 조치를 서두르지 않으면,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을 외면하고 중국으로 몰려갈 것이 뻔하다.
미·중 무역분쟁이 타결되면 2050년까지 기술 혁신과 첨단 기업 육성을 통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중국의 국가전략 중 하나인 '중국 제조 2025' 역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획기적으로 경쟁력을 제고하지 않으면 이웃나라 거대한 소비시장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