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만명. 올해 취업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중국의 대학교 졸업생 규모다. 대략 부산·대구·인천광역시 인구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이들이 취업에 성공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매년 반복되는 국가적 과업이다.
고학력 집단이 대거 실업자가 돼 방황할 경우 체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지난달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하며 "취업은 민생의 근본"이라고 강조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 졸업생에게 구직 및 창업 보조금을 제공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금전적 지원을 하는 '직업 선택기' 개념을 도입하는 등 아이디어가 속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취업률을 끌어올리려는 중국 중앙·지방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을 소개한다.
◆中 청년실업률, 일반 실업률 2배 육박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중국 취업 현황과 정책'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5~29세 구간의 청년 실업률은 9% 수준이다. 5% 안팎인 중국 도시지역 실업률보다 2배 가까이 높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청년들의 취업난도 만성적인 문제다. 중국의 대학 졸업생은 2014년 처음으로 700만명을 돌파한 뒤 2015년 749만명, 2016년 765만명, 2017년 795만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해 8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834만명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사상 최대 규모다.
문제는 늘어나는 구직자를 감당할 만큼 일자리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나타난 당연한 결과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6.4%로, 지난해 1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 이어지던 하락세가 겨우 멈췄다.
중국의 제조업 비중이 30% 수준으로 떨어지고, 고용 창출 효과가 낮은 정보기술(IT) 분야가 산업구조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것도 취업률 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미·중 무역전쟁은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말 중국 최대 의료장비 제조업체인 마이루이(邁瑞)가 신입사원 485명을 뽑았다가 254명의 채용을 취소한 게 상징적인 사례다. 무역전쟁 등으로 실적 악화가 예상됐던 탓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최대 구인사이트 중 하나인 자오핀왕(招聘網)에 올라온 채용 공고가 지난해 4월부터 9월 사이에 200만개 이상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자오핀왕의 IT·전자상거래 분야 채용 공고가 15%, 온라인 게임 분야의 경우 30%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취업 지원 팔 걷어붙인 중앙정부
올해 신규 대졸 구직자 규모가 역대 최대치로 예상되자 중국 정부도 사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019년 전국 대학 졸업생 취업·창업 업무 통지'를 통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앞두고 있는 공공기관 및 기업에 몇 가지 지침을 하달했다.
학자금 대출 상환 지원, 대학원생 가산점 부여, 중소기업 취업 촉진, 직업훈련 확대 등이 골자다. 신규 채용에 적극 나선 중소·영세기업에 대해 사회보장기금 적립금을 보조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 각 대학에 캠퍼스 내 채용 활동을 철저히 관리하라고 주문했다. 기업들이 사전 채용 과정에서 성별·민족·학교명 등의 조건을 제시할 경우 학교가 나서 제지하라는 것이다.
한 달 뒤 국무원은 "취업 촉진 업무에 관한 의견'을 통해 올해 초부터 인턴 근무를 하는 청년에 대한 보조금 지원 범위를 미취업 대학 졸업생에서 16~24세 실업 청년 전원으로 확대했다.
여성 구직자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지난 2월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 등 9개 부처는 '채용 행위 규범화를 통한 여성 취업 촉진에 관한 통지'를 각 기업에 하달했다.
채용 공고나 실제 전형 과정에서 성 차별 사례가 드러날 경우 엄단하겠다는 내용이다. 여성의 혼인 및 출산 여부를 확인하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방정부 아이디어 경쟁, 양극화 논란도
중국 지방정부는 해마다 신규 채용 규모 할당량을 받는다. 목표 달성 여부가 해당 지방정부 수뇌부의 인사 고과에 반영된다.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와중에서 취업 지원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허난성은 올해부터 최저생활보장제도가 적용되는 가정이나 빈곤 가정, 장애인 가정 내 대졸 구직자의 학자금 대출 상환 지원에 나섰다. 빈곤층 구직자에게 2000위안의 취업·창업 보조금도 지급하기로 했다.
저장성의 취업·창업 보조금은 3000위안으로 더 많다. 장시성은 졸업 후 1년이 지나도록 미취업 상태였던 대졸 구직자가 취업에 성공할 경우, 최대 2년 동안 사회보장기금 개인 납입분의 3분의2를 감액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다른 지방정부와 차별화된 제도를 새로 도입한 곳도 있다.
광둥성은 올해부터 대학원·학부·전문대 졸업생의 경우 2년, 박사 출신은 5년의 '직업 선택기'를 부여하고 있다. 이 기간 중에는 해당 졸업생의 출생지 지방정부가 일정 수준의 자금을 지급하며 취업 활동을 뒷바라지한다.
광둥성 교육청 관계자는 "목표가 분명한 학생의 경우 직업 선택기 동안 공무원 시험 등 국가 고시를 준비할 수 있다"며 "학업을 지속하려면 대학원 응시나 해외 유학에 도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고급 인재 유치에 적극적인 지방정부도 있다.
산시성 성도인 시안시는 대학 졸업생이나 재학생을 대상으로 '묻지 마 호적 발급' 제도를 시행 중이다. 대학 이하 학력자라도 만 45세 이하라면 호적을 발급해 준다. 청년층 유출이 심각해지자 고육책으로 도입한 제도다.
하이난성 하이커우시는 50세 이하 이공계 우수 인재의 경우 월 5000위안의 집세를 지원한다. 주택 구입을 원하면 연 6만 위안의 보조금을 준다. 일반 대졸자도 월 1500위안의 집세 보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장쑤성 전장시는 석사급 15만 위안(약 1억7000만원), 박사급 20만 위안 규모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도입한 결과 올 들어서만 1만6000명 이상의 인재가 유입되는 효과를 누렸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는 우수 인재의 기준은 대졸, 고학력 해외 유학자, 기술 전문직 등"이라며 "이 같은 제도가 확대될수록 일반 구직자나 농민공 등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