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는 한국투자증권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부터 시작한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발행어음으로 모은 1670억원을 특수목적회사(SPC)에 빌려줬다. 다시 SPC는 SK실트론 주식을 19%가량 취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PC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있었다. 그는 계약대로 주가 등락에 따른 위험을 안는 대신 개인자금 없이 SK실트론 주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금감원은 이를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보았다. 법으로 막은 개인대출이 최태원 회장을 상대로 이루어졌다는 거다. 애초 금감원은 혐의를 잡았던 1년 전만 해도 한국투자증권에 중징계(영업정지)를 내릴 생각이었다. 그랬다가 이달 초 징계수위가 훨씬 가벼운 기관경고로 바뀌어 확정됐다.
배경이 궁금했다. 금융위는 한 달 전쯤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를 열었다. 법령심의위는 이번 징계보다도 먼저 자본시장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의견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금융위가 중립적으로 심의해야 할 금감원에 사전 지침을 준 셈이다.
금융위는 5년 전부터 법령심의위 제도를 시행했다. 심의위는 지금까지 31차례 열렸다. 여기에는 민간위원 4명을 합쳐 모두 9명이 들어간다. 수당도 지금껏 6000만원 가까이 지급됐다. 그래도 심의위를 공개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깜깜이 행정은 의구심을 키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가 우리보다 먼저 자문기구를 연 자체가 의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증권가에도 혼란을 주었다.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업자 1호이기도 하다. 경쟁사도 이번 사안을 1년 넘도록 불안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새 먹거리로 반겼던 발행어음업 자체가 움츠러들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이 일개 금융사를 이렇게까지 비밀스럽게 심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도리어 드러내야 '군기를 잡는다'라거나 '눈감아준다'와 같은 의구심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답은 더욱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