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트럼프', '도전을 즐기는 괴짜 경영인', '워커홀릭', '여성편력이 강한 기업인'
세계 최대 아이폰 생산공장인 폭스콘(富士康·푸스캉)을 이끄는 궈타이밍(郭臺銘) 대만 훙하이(鴻海)정밀공업 회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최근 궈 회장이 대만 차기 총통선거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2020년 대만총통 선거에서 '대만의 트럼프'가 탄생할지 관심이 쏠린다.
'대만의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저돌적이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 궈 회장은 대만에서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의 주요 제품을 조립·생산하는 폭스콘의 창립자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폭스콘의 모그룹이 훙하이정밀공업이다.
1950년 10월 대만에서 태어난 궈 회장은 대만에서 대표적인 친중 기업가다. 중국 대륙 출신인 그의 부모님은 국공내전 당시 대만으로 건너왔다. 그는 대만 중국해사전문대를 졸업한 후 당시 잘나가던 해운회사인 대만푸싱항운공사에 입사해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해외시장과 여러 무역상품의 시장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플라스틱 제조 하도급 업체를 찾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직접 플라스틱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1974년 수중에 있던 10만 대만달러(약 369만원)로 훙하이정밀공업의 모태인 훙하이플라스틱회사를 설립해 모니터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는 24살에 훙하이플라스틱회사를 설립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줄이면서 국제유가가 치솟았고, 플라스틱 제조 비용이 덩달아 크게 상승한 것이다.
궈 회장은 도전을 즐기는 경영인이었다. 유가상승으로 플라스틱 사업이 어려워지자 개인용 컴퓨터(PC)와 다른 전자기기를 연결해주는 커넥터 등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1980년 당시 최고의 게임기 제조회사였던 미국 아타리(Atari)가 비디오게임기의 조이스틱과 게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서부터 궈 회장은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궈 회장은 글로벌 전자제품 제조회사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갖고 회사 이름을 훙하이정밀공업으로 개명한다.
그로부터 4년 뒤 최초 거래처였던 아타리가 파산하자 궈 회장은 무작정 미국 대장정에 나선다.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은 채 11개월 동안 미국 컴퓨터·게임기 회사를 찾아다니며 세일즈에 나섰고, 미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궈 회장은 1988년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 전자 공장을 세우고 연구개발 인력을 미국과 중국에서 8000여명으로 늘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폭스콘이다. 당시 중국과 대만 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대만 기업의 진출을 꺼리는 분위기였지만, 궈 회장은 오히려 공장 내에 직원들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와 식당·의료시설까지 건설하며 대형 공장 단지를 세우는 도전을 감행했다.
폭스콘은 1997년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애플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게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폭스콘은 애플의 아이폰 제조 하청공장으로 성장하며 TSMC에 이은 대만 제2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현지 매체 펑파이신문(澎湃新聞)은 궈 회장의 부지런한 성격과 경영철학 덕분에 폭스콘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그가 하루 16시간을 일하고 삼시세끼를 책상에서 해결하는 '일 중독자'였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게 되자 궈 회장은 '고객 제일주의’를 앞세워 수년째 폭스콘을 이끌고 있다.
궈 회장은 기업인으로 성공했지만 '여성편력이 강한 기업인', '막말제조기'라는 비난도 받는다. 2010년부터 정저우(鄭州)시 폭스콘 공장에서 근로자 3명이 잇따라 투신자살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논란이 일었을 때도 그는 “인간도 일종의 동물이고 100만명이 넘는 동물을 관리하는 일은 머리 아픈 일”이라고 막말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궈 회장은 한때 여자관계도 복잡했다. 2005년 첫 부인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류자링, 린즈링 등 많은 여배우들과의 염문설에 휩싸였다. 이후 2008년 24세 연하인 안무가와 웨딩마치를 울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재 슬하에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이 있다.
한편,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궈 회장은 대만의 최고 부호이자 세계 206위의 부자다. 그의 자산 가치는 16일 기준 77억 달러(약 8조7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최대 아이폰 생산공장인 폭스콘(富士康·푸스캉)을 이끄는 궈타이밍(郭臺銘) 대만 훙하이(鴻海)정밀공업 회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최근 궈 회장이 대만 차기 총통선거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2020년 대만총통 선거에서 '대만의 트럼프'가 탄생할지 관심이 쏠린다.
'대만의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저돌적이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 궈 회장은 대만에서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의 주요 제품을 조립·생산하는 폭스콘의 창립자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폭스콘의 모그룹이 훙하이정밀공업이다.
1950년 10월 대만에서 태어난 궈 회장은 대만에서 대표적인 친중 기업가다. 중국 대륙 출신인 그의 부모님은 국공내전 당시 대만으로 건너왔다. 그는 대만 중국해사전문대를 졸업한 후 당시 잘나가던 해운회사인 대만푸싱항운공사에 입사해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해외시장과 여러 무역상품의 시장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24살에 훙하이플라스틱회사를 설립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줄이면서 국제유가가 치솟았고, 플라스틱 제조 비용이 덩달아 크게 상승한 것이다.
궈 회장은 도전을 즐기는 경영인이었다. 유가상승으로 플라스틱 사업이 어려워지자 개인용 컴퓨터(PC)와 다른 전자기기를 연결해주는 커넥터 등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1980년 당시 최고의 게임기 제조회사였던 미국 아타리(Atari)가 비디오게임기의 조이스틱과 게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서부터 궈 회장은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궈 회장은 글로벌 전자제품 제조회사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갖고 회사 이름을 훙하이정밀공업으로 개명한다.
그로부터 4년 뒤 최초 거래처였던 아타리가 파산하자 궈 회장은 무작정 미국 대장정에 나선다.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은 채 11개월 동안 미국 컴퓨터·게임기 회사를 찾아다니며 세일즈에 나섰고, 미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궈 회장은 1988년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 전자 공장을 세우고 연구개발 인력을 미국과 중국에서 8000여명으로 늘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폭스콘이다. 당시 중국과 대만 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대만 기업의 진출을 꺼리는 분위기였지만, 궈 회장은 오히려 공장 내에 직원들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와 식당·의료시설까지 건설하며 대형 공장 단지를 세우는 도전을 감행했다.
폭스콘은 1997년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애플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게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폭스콘은 애플의 아이폰 제조 하청공장으로 성장하며 TSMC에 이은 대만 제2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궈 회장은 기업인으로 성공했지만 '여성편력이 강한 기업인', '막말제조기'라는 비난도 받는다. 2010년부터 정저우(鄭州)시 폭스콘 공장에서 근로자 3명이 잇따라 투신자살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논란이 일었을 때도 그는 “인간도 일종의 동물이고 100만명이 넘는 동물을 관리하는 일은 머리 아픈 일”이라고 막말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궈 회장은 한때 여자관계도 복잡했다. 2005년 첫 부인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류자링, 린즈링 등 많은 여배우들과의 염문설에 휩싸였다. 이후 2008년 24세 연하인 안무가와 웨딩마치를 울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재 슬하에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이 있다.
한편,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궈 회장은 대만의 최고 부호이자 세계 206위의 부자다. 그의 자산 가치는 16일 기준 77억 달러(약 8조7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