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주역인 그가 최근 재계의 화두인 사회적 책임 활동도 한발 앞서 개척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 회장은 여느 재벌가 자제와 다르게 1970년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했다. 당시 대부분 재벌가 자제들이 병역을 면제받은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특히 조 회장은 강원 화천 소재 육군 제 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하며, 베트남에도 파병돼 11개월 동안 근무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소명의식은 대한민국의 염원이었던 동계올림픽 개최로 이어졌다. 그는 국가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 동안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다.
조 회장은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 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조 회장은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을 받기도 했다. 이는 조 회장이 몽골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몽골 학생 장학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몽골 관계를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확대 발전시켰다.
재계 관계자은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조 회장이 노력한 결과"라며 "그는 평생 하늘길을 벗 삼아 우라나라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힘써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