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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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는 소리로 알아요
□□ □□□ □□는 아빠
□□□□ □□□는 누나
할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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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천천히 눌러도
제일 빨리 나를 부르던
이제 기억으로만 남은 소리
보 고 싶 은
할 머 니
문현식의 '비밀번호'
2019년 2월 13일 트위터에 올라온 이 동시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소셜 네트워크와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간 게시물에 줄줄이 뭉클한 마음의 '굴비'가 달렸다. 한때 이 시의 주인공이 초등생으로 알려졌지만, 시를 쓴 사람은 문현식 시인(45)이다. '비밀번호'는 2015년 창비에서 출간된 시집 '팝콘교실'에 실려 있다.
도어록의 일곱 자리 비밀번호는 가족이 공유하는 기억이다. 아마도 모두가 기억하기 좋도록 식구끼리 다 알 수 있는 번호로 정하는 '우리끼리'의 정보다. 숫자에는 표정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누르는 사람이 기억을 호출해 버튼을 누르는 방식에는 표정이 있다는 걸, 귀가 알아챈다. 세 자리를 먼저 찍는 엄마, 두 자리와 세 자리와 두 자리를 나눠 찍는 아빠, 네 자리를 한꺼번에 먼저 찍는 누나의 차이는 그들의 성격과도 닮아 있을 것이다. 엄마는 바르게 찍으려는 신중한 마음이 발동하는 것일까, 아빠는 뭐더라 하는 기분으로 기억 속에서 찾아내어 찍는 느낌일까. 누나는 성급하게 후닥닥 찍으려는 마음 아닐까.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걸 듣는 '동생'의 귀는 찍는 호흡만 봐도 누군지 이미 다 알기 때문이다.
동생이 그걸 아는 까닭은 그 소리를 많이 들어 귀에 익기 때문이고, 처음에는 누굴까 하고 궁금증을 키우다가 누르는 소리와 당사자의 연관성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저건 누구일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맞았기도 하고 틀렸기도 하다가 저절로 익힌 것이다. 누르는 스타일만으로도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고, 성격이 떠오르고, 말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부르는 소리보다 더 분명하게 하나의 인식코드가 되어 마치 호명하는 소리를 듣듯 반갑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귀는 저 소리를 감별해낼 뿐 아니라, 부재하는 소리를 듣는다. 흐린 눈으로 천천히 더듬더듬 누르던 한 사람. 얼마 전까지 너무나 익숙했던, 느린 버튼 소리. 네 개쯤 눌렀다가 다시 뜸을 들여 쉬고는 다시 누르는 세 개.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리다. 엄마·아빠·누나의 누르는 소리를 떠올리다가, 문득 그때까지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그 소리를 기억하는 순간 사무치는 마음이 터져 나온다. 그 어눌한 버튼 누르기처럼 나도 똑같이 그런 버튼의 동작으로 천천히 그 할머니에게로 가는 비밀번호를 눌러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비밀번호의 진짜 글씨는 ‘보/고/싶/은 할/머/니’ 일곱 자였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식구(食口)란 밥을 함께 먹으려 밥상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이다. 때론 아웅다웅하기도 하고 때론 한숨이나 눈물 섞인 밥을 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식구가 있었기에 힘이 나고 슬픔이 가라앉았다. 비밀번호는 출근하고 등교하고 외출했던 식구들이 귀가하는 길목에 있는 ‘열려라 참깨’ 같은 것이다. 깨소금 같은 식구들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 꼭꼭꼭 누르는 마음 바쁜 통과의례다. 지금 현관에 당도한 식구의 달콤한 기별.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하나의 부재(不在)를 느끼는 섬세한 손자의 애상을 하늘에서 보셨다면, 몰래 그 번호를 눌러주시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빈섬(시인·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