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수수료율 인상을 놓고 국내 카드사와 유통사들이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와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협상에서 사실상 ‘판정패’를 당한 카드사들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유통사에 대해서만큼은 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통사들도 카드사의 수수료율 인상 요구에 대해 단호한 거부 의사를 밝히며 칼을 갈고 있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지난달 카드사가 통보한 가맹점 수수료율 인상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최근 카드사에 전달했다.
앞서 지난 10일 현대차는 일부 카드사에 ‘가맹 계약 해지’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1.9%대로 인상된 카드 수수료율을 1.89% 수준으로 낮췄다. 현대차와의 협상이 사실상 카드사가 원치 않는 대로 타결되면서, 이를 학습한 유통업계도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카드사들은 지난달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에 이달 1일부터 수수료율을 평균 0.14% 포인트 인상한 2%대 초반으로 적용하겠다고 통보하고 그대로 부과하고 있다. 이후 최종 결정된 수수료율에 비해 현재 적용한 수수료율이 높거나 낮으면 차액을 추후 정산한다.
이마트는 “카드사가 유통업체에 대해 수수료율을 2% 초반으로 올리는 근거를 모르겠다”면서 “자금 조달·마케팅 비용이 늘었다지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마트는 카드사 요구대로 수수료율을 올릴 경우 연간 1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울상이다.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도 카드사로부터 0.04~0.26% 수수료율 인상 통보를 받고 최근 ‘수용 불가’ 의견을 전달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도 비슷한 인상안을 통보받고 수수료율 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다만 유통업계는 현대차처럼 ‘가맹점 계약 해지’ 같은 극단적인 초강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백화점 등 유통업체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것은 장사를 안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계약 해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현대차처럼 우위에서 협상력을 가진 입장이 못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카드사는 최근 홈쇼핑 업계와 일찌감치 수수료율 협상을 끝냈다. CJ오쇼핑, GS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홈쇼핑 3사는 이달 초 수수료율 협상을 큰 잡음 없이 마무리지었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은 카드사의 무이자할부, 추가 할인 혜택 등에 의존해 마케팅을 하기 때문에 ‘을’일 수밖에 없다”면서 “수수료 부담을 좀 지더라도 매출에 타격이 크기에 조속히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다만 마트와 백화점 등은 현대차나 홈쇼핑업계와 달리 ‘시간 끌기’ 작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가맹점 계약 해지’라는 벼랑 끝 전술을 택해 오히려 조급증이 생긴 카드사로부터 협상 타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유통업계의 경우, 이전에도 카드사와 수수료율 협상이 수개월씩 걸렸던 터라 이번에도 여론의 추이를 살피면서 지루한 신경전을 펼칠 공산이 크다. 실제 2016년 수수료율 인상 당시에도 5개월 이상 협상이 지연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