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일이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헌법에 명시돼있듯이 우리나라의 법통이 시작된 계기가 3·1운동입니다. 이번 100주년을 맞이해 종로에 남아있는 주요 유적을 찾아봤습니다.
◆ 태화관
여러 재건축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11층에 태화복지재단이 있지만 건물 앞 ‘삼일운동유적지’라는 큼지막한 비석과 그 밑에 적혀있는 태화관의 역사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이들의 심경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1918년 명월관이 소실되면서 ‘태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순화궁 터였던 이곳에 새롭게 개점했습니다. 명월관이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회합 장소로 쓰였던 것처럼 태화관 역시 ‘만남의 장소’로 쓰이다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 탑골공원
탑골공원을 가기위해 태화빌딩 쪽 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건너편을 살펴보니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르신 지도’입니다. 100년 전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그곳은 이제 그분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삼일문’이라는 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달았던 것을 2001년 한국민족정기소생회 회원들에 의해 ‘3·1운동 발상지의 현판을 일본군 장교 출신이 적어놓은 것으로 걸 수 없다’는 이유로 2003년 새롭게 걸린 그것이었습니다.
파고다, 탑골 등의 이름이 생긴 이유는 삼일문 안으로 들어가니 알 수 있었습니다. 국보 제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수백 년 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경내를 둘러보면 3·1운동 100주년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인제군문화재단’에서 세워져있는 독립선언서 전문이 적힌 비문을 탁본을 하고 있었습니다. 탁본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전시할지 물어보니 문화재단에 100주년 기념해 전시할 예정합니다.
탑골공원 앞 어르신 지도가 있는 이유가 확연할 정도로 많은 어르신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에게 3·1운동은 이제 후손들의 몫입니다.
공원에 오신 A씨(83)는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33인이 주도했는데, 사실 이외에도 여러 이름 없는 사람들이 많은 운동을 했다. 그런 분들에 대해서 젊은 층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안 나타났지만 엄청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후세들이 좀 더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서대문형무소
옛날 건물이라 높이가 낮다는 인상을 주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시대의 변화를 몸소 느끼게 해줬습니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 구치소였기 때문에 아직도 그곳에 수감됐던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의 옥고가 느껴지는 정문입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3·1운동 100주년을 기리고자 아이들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역사관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사람 키보다 훨씬 작은 관에 들어가 고통 받는 고문실,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주는 장소 등을 보며 사람대접이라고는 기대조차 할 수 없던 곳이라 느껴졌습니다.
이곳에 방문한 아이들은 “무서워요”, “으스스해요”를 말하면서도 “그분들이 노력해서 저희가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감사드리고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친구와 방문한 B씨(23, 여)는 “참담한 우리 역사의 흔적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며 “10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앞으로 좀 더 알고 배워야 한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역사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활동하는 김태동 차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관에서 3·1운동에 참여해 수감됐던 분들을 대상으로 자료집을 발간했다”며 “3·1운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인뿐만 아니라 농민, 학생, 우리 주변에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일반 시민들이 모두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3·1운동이 새로운 100년을 맞이해 이제는 보통 시민들의 저력을 다시 조명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