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살린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동남권 신공항은 1992년 김해공항의 대안으로 부산 도시기본계획에 제시된 이후 '공론화→공약→백지화' 등을 반복한 판도라 상자다.
동남권 신공항이 정권마다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애초 목표였던 '동북아 제2의 허브공항'은 간데없고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간 갈등의 진원지로 전락했다. 대규모 국책사업인 만큼 후유증도 컸다.
◆동남권 신공항 '잔혹사'…정권마다 롤러코스터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동남권 신공항은 노무현·이명박(MB)·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검토→공약→백지화→재검토' 등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 과정에서 이름만 '부산권', '남부권', 동남권', '영남권' 등으로 바뀌었다.
동남권 신공항의 운명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저에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파워게임이 깔렸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 과정에서 "부산에서 5석을 더불어민주당에 주면 박근혜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신공항을 착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부산시의 숙원 사업인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앞세워 PK 표심에 구애를 보낸 것이다. 당시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5석)과 경남(3석)에서 8석을 건지면서 제1당으로 우뚝 섰다.
특히 현 여권의 낙동강벨트 구축은 '야권 갈라치기'와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주자'를 동시에 타격하는 일거양득 전략이다.
당시 보수의 맹주였던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경남 밀양과 가덕도 대신 김해공항 확장(김해신공항)이란 제3의 길을 선택한 '박심(박 전 대통령 의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산시장이었던 서병수 전 의원은 TK 패권론을 꺼내며 '내부 분열'에 불을 댕겼다.
◆PK·TK 제2라운드…의원들 '너도나도' 신공항
PK와 TK는 이미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제2라운드'를 전개했다. 부산시는 문 대통령 발언 직후 "큰 선물을 줬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구통합신공항을 원하는 대구시 관계자는 이날 "시곗바늘을 13년 전으로 다시 돌릴 수 없다"고 맞섰다. 2003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PK지역 상공인 간담회에서 "(동남권 신공항의)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고 답한 해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문 대통령의 부산 지역 방문이 잦아진 데 대해 "이 지역 지지율이 흔들리니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선물 공세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두 달간 PK 지역에 다섯 차례(공식 방문 세 차례+개인적 방문 두 차례)나 방문했다.
더 큰 문제는 동남권 신공항발(發) '편승 효과'다. 박근혜 정부 시절 신공항 이슈는 영남권을 넘어 '호남'까지 상륙했다. 전남에선 '무안 신공항 활성화' 문제, 전북에선 '새만금 신공항 지지'를 고리로 여론전을 전개했다. 새만금 신공항은 문재인 정부에서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사업으로 지정됐다. 지역에선 만년 적자인 무안 신공항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남 완도에선 '흑산도 신공항' 추진에 매진한다. 인구 500만명에 불과한 호남에 또 다른 신공항을 추진하자는 얘기다. 충남에선 '서산 공항' 추진을 주장한다.
그러나 법안 발의는 없다. 신공항 인허가 관련 법은 국토계획법 등을 비롯해 30개에 달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공항시설법 개정안' 등 운영 활성화를 위한 법안만 있을 뿐 인허가 관련 법안은 전무하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 교수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발언을 했어도 영남 5곳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실제 추진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