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의 행진곡' 풀스토리]
# 구미호의 꼬리와 카프리카의 불변수
구미호(九尾狐)의 꼬리는 왜 아홉개일까요. 이 전설의 짐승은 다른 동물과 달리 죽어도 살아날 수 있는 회생의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수학적으로 풀어낸 것이 인도 수학자 카프리카의 불변수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숫자를 택해 두 자리 숫자를 만든 뒤 그 차이를 계속 구하면 9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1과 5를 선택할 경우 15와 51을 만들 수 있고, 그 차이는 36입니다. 36은 36과 63을 만들 수 있고 그 차이는 27. 또 27은 27과 72를 만들 수 있고 그 차이는 45. 여기서 45와 54의 차이는 9로 떨어집니다. 피타고라스는 9 속에 다른 모든 숫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그 속에서 순환한다고 했습니다.
# 만다라는 9의 제곱개의 삼각형
동양의 신화에서는 신의 거처로 하늘을 아홉개로 나눠 구천(九天)이라 하고 땅을 아홉개로 나눠 구천(九泉)이라 합니다. 힌두교의 만다라는 9의 제곱인 81개의 삼각형으로 이뤄져 있으며 우주의 상징입니다. 도교의 경전 '옥추보경'에는 9를 태양의 수이며 하늘의 도(道)를 드러낸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9를 법(法, 진리)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에서는 9가 최상급의 뜻을 지니고 히브리어에선 불가사의한 힘을 상징합니다. 영어 표현에서 "난 아홉번째 구름을 타고 있어(I am on cloud nine)"은 기분이 아주 좋다는 의미입니다.
# 김일성과 평안도 무당 '맹호출림'
북한의 김일성은 해방 이후 조선8도에서 가장 기운이 셌다는 평안도 출신의 무당 '맹호출림'에게서 "당신의 길운은 9와 통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얘기가 북쪽 '유비통신'을 통해 나옵니다. 공화국 창건일이 9월9일인 점, 원래 5개도였던 북한 행정구역이 9개도로 된 점, 경호부대 명칭이 936부대인 점, 정권의 전용농장이 9호농장인 점 등을 그 근거로 꼽기도 합니다.
# 김정일 전속요리사 후지모토의 증언
이런 떠도는 얘기를 확인해준 것은 1988년부터 13년간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입니다. 김정일의 생일은 2월16일로 합하면 9가 되는 숫자며, 전용차 번호판과 대남담당 차량 번호판도 216으로 시작합니다. 김정일의 당 총비서 추대일은 10월8일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바카라(카드 석장으로 합계 숫자의 끝자리수 크기를 가리는 게임)광이었는데 가장 큰 숫자인 9에 대한 집착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김정은은 1월8일생이며 9번째 되던 생일날 아버지 김정일은 그에게 '발걸음'이란 노래를 지어줍니다. 거기엔 김정은을 작은대장이라 호칭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것은 9월27일, 2009년 장거리로켓 2호 발사실험을 한 날은 4월5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공개한 장거리로켓 이름은 은하9호였습니다.
# 북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날짜들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 김대중-김정은) 6월12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북한측의 갑작스런 내부사정으로 하루 연기되었습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2018년 4월27일이었습니다. 2018년 문재인대통령이 제5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날은 9월18일이었습니다.
1차 북미정상회담을 한 날짜는 6월12일로 김정은 생일을 거꾸로 한 숫자였죠. 이제 베트남에서 열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다낭과 하노이가 후보지로 거론됐으나 북한 측이 안전과 상징성을 이유로 하노이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개최 날짜는 2월27일입니다. 북한의 권력3대가 모두 9를 길한 숫자로 믿고 있을 개연성과, 지금까지도 진행되는 듯한 '우연한 숫자게임'들 중에서 일부는 우연이나 과장스런 짐작에 불과한 것일지 모릅니다. 택일에까지도 이토록 상징의 힘을 빌리는 뜻이 담겼다면 북한의 최근 선택들이 더욱 절실하고 필사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