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여배우 홍은희가 방송프로에서 여고생으로 변신해 고등학교 국어시간 시(詩) 수업을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학우가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을 낭독했을 때 갑자기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왜 우느냐고 물었죠. 홍은희는 아이 둘의 엄마였습니다. 시를 듣던 그녀의 속에 들어앉은 것은 꽃게를 달게 발라먹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배 속에 수많은 자식을 품고 있는 꽃게엄마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등판에서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몸속의 새끼가 다칠까 꿈틀꿈틀 버둥거리는 그 본능의 모성애. 우리의 마음이 다 죽어가는 꽃게가 되었을 때에야, 힘없고 낮은 목소리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릴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캄캄한 절망의 시간에 품 속의 자식을 다독이며 최후의 자장가를 부르는 성스러운 저 음성은, 꽃게에게서 인간이 발견한 신성(神性)이 아닐지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생명에 대한 우리의 감각도 좀 더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식용으로 키운 동물이라 할지라도 잔혹한 최후를 맞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안도현의 시를 읽고 난 이들 중에서, 더 이상 간장게장을 못 먹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우리만을 생각하며 사느라 둔감해졌던 것들에 대해 보다 세심해지고 다정해지는 '감정이입의 교실'이기도 합니다.
이빈섬(시인.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