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한복판인 폴란드에서 화웨이 직원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면서 중국이 그동안 동·중부 유럽에 구애작전을 펼치며 공 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폴란드에서 촉발된 화웨이 스파이 체포 사태로 화웨이의 글로벌 사업에 위기가 가중되는 것은 물론, 중국 정부가 그동안 중·동부 유럽과 쌓아온 관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 동안 중국은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를 앞세워 중동부 유럽 국가에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를 진행해 왔다. 앞서 2012년부터는 중동부 유럽(CEEC) 16개국과 중국 간 정기협의체인 '16+1' 정상회의도 개최해 왔다. 중국은 현재까지 해당 지역에 150억 달러(약 16조8000억원) 투자도 약속했다. 이번 사태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폴란드는 중동부 유럽 최대 경제체로, 제1회 16+1 정상회의를 개최한 도시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다. 친미 성향이 강하지만 그동안 중국과도 밀접한 통상관계를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왕 주임은 "다른 대다수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폴란드는 미국과의 안보·군사적 동맹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화웨이 안보 우려와 관련해 폴란드가 미국과 같은 편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미·중간 갈등이 심화될수록 다른 유럽국가는 물론 세계 각국이 비슷한 딜레마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국제문제 분석가인 팡중잉은 "이번 사건은 비록 유럽과 미국이 통상문제나 정치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데에는 둘 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유럽 국가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줄곧 불만을 표시해 왔기 때문이다.
팡 전문가는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는 중국의 대(對)유럽 관계는 앞으로 더 큰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며 "만약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중대한 양보를 하면 유럽 국가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중국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번 폴란드에서 벌어진 화웨이 스파이 체포 사건이 오는 4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 그리고 올해 크로아티아에서 개최될 예정인 16+1 정상회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향후 화웨이 글로벌 사업 역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이어진 화웨이 보이콧 움직임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럽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중국 본토 다음으로 큰 화웨이의 최대 해외시장이다. 화웨이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화웨이의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사업 매출이 1639억 위안(약 27조원)으로, 전체 매출의 27.1% 차지했다.
팡 전문가는 "폴란드는 화웨이 유럽 중동부와 북부 지역 본사가 소재한 곳으로, 화웨이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유럽 정책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호주·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 진출에 고전하던 화웨이는 유럽 지역으로 발길을 돌려 사업을 확장해 왔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중동부 유럽 시장에서 확보한 안정적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8일 폴란드 당국이 현지 화웨이 임원인 왕웨이징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한 직후, 화웨이는 신속하게 왕씨를 해고하고 이번 사건이 자사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폴란드 내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에 따른 국가 안보 위협 우려가 한층 더 고조됐다.
요아힘 브루드진스키 폴란드 내무장관도 화웨이 직원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한 직후인 지난 12일(현지시각) 현지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유럽연합(EU)과 나토가 화웨이의 통신장비 사용을 배제할지에 대해 공동으로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미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도 5세대 이동통신(5G)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영국에서는 해외정보국(MI6) 수장에 이어 국방장관까지 나서 공식적으로 화웨이의 5G 장비에 대한 안보 우려를 제기했으며, 독일 도이치텔레콤·프랑스 오랑주텔레콤 등도 "화웨이 장비 사용을 재검토하고 당분간 도입을 보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노르웨이·스웨덴도 화웨이 5G 장비 사용 여부 검토에 돌입했다. 체코 정부는 최근 보안 우려를 이유로 자국 공무원들에게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