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나이' 쓰지맙시다?…태어나자마자 한살 먹는 비밀

2019-01-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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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 이상국의 '낱말의습격']우리 나이는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시간을 재는 게 아니다

 

 



서양의 나이 개념이 익숙해지면서, 한국식 나이가 불편하다는 얘기가 해마다 이맘때쯤(정초)이면 나온다. 사실 불편하긴 하다. 서양의 나이 개념은 생일을 중심으로 기산(起算)하기에 쉽고 직관적이다. years-old는 생일로부터 지난 해의 숫자를 말하고, months-old는 생일에서 지나온 달의 숫자다.

우리는 이 달의 개념을 아이에게만 쓴다. 어머나, 귀여워라. 몇 달 됐어요? 일곱 달이예요. 세상에! 이런 대화에서 등장한다. 숫자가 작고 기간이 짧을수록 놀라움이 커진다. 개월수(달)이 너무 많아져서 셈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이런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278개월 됐어요. 이런 말 하는 사람은 드물다.

달의 개념 속에는 자세하게 시간을 표현함으로써 그 시간들 속의 생생한 변화나 성장을 기입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들어있다. 이걸 응용한 것이, 사랑의 개월수다. 만난지 몇 개월 됐어요? 알콩달콩하겠네? 싱숭생숭하겠네? 그 숫자가 말하는 기간들 속에 숨은 긴박한 감정들을 추정하는 것이다.

이걸 더 세밀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셈을 더 세분하게 한다. 만난지 100일, 만난지 1000일. 기념은 이렇게 하나의 기간을 설정하고 그 기간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시간의 맛을 즐긴다.

한국식 나이에 대한 불만은, 위에서 열거한 시간에 대한 셈법과는 조금 맞지 않는데서 나온다. 탄생과 현재와의 시간을 계산하면 될 것을, 굳이 1월1일이란 한해의 시작을 눈금으로 맞춰놓은 게 한국식 나이다. 물론 예전에는 음력으로 계산하는 것이었지만 이젠 양력으로 하는데도, 여전히 같은 방식이다. 왜 이렇게 하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설이 있으나, 확정하기 어렵다.

또 이 나이계산법은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된다. 태어난 그해는 한살이며 해가 바뀌어야 두 살이다. 아직 1년이 안됐는지 왜 영살이 아니라 한 살인지에 대해서는, 임신해있는 동안도 이미 살아있는 존재이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생애 속에 포함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그럴싸 하지만 그렇다면 10개월을 해야지 왜 12개월까지 덤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이 군색하다.

한국식 나이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다. 동북아에 속한 이 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며 겨울이란 시기를 거친다. 지금은 겨울 또한 여러가지 문명의 이기로 따스하게 지내지만, 오랜 시절부터 겨울을 견디는 일은 인간에게는 깊은 공포였다. 원시의 동식물처럼 겨울을 살아내야 한 해를 산 것이었다. 특히 신생아에게 겨울은 저승사자 코밑에서 지내는 것과 같은 무서운 계절이었다.

우리가 나이를 말할 때 쓰는 세(歲)는 한해에서 가장 추운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를 지나야 1년을 산 것이다. 이걸 지나지 못하면 죽은 존재다. 우리말의 '살' 또한 '설'에서 온 것이다. 설날이란 말에 들어있는 설은 명절을 뜻하기도 하지만 음력으로 가장 추운 날로 꼽히는 1월1일이 드는 바로 그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살'과 '설'은 모두 고어(古語)의 '술'에 나온 같은 말이다.) 한 살이란 한 설을 지낸 것이다. 1세 또한 같은 의미다.

우리는 태어나면 그냥 한 살을 먹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그해에 있는 설 하나를 의식해서 한 살로 계산하는 것이다. 태어난지 1분도 안되어 한 살이 되는 경우도 있고, 태어난지 12개월을 거의 꽉 채워서야 한 살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쨌거나 태어나면 설 하나를 통과해야 그해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게 설 하나 짜리의 한 살이다. 그 설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는 영아도 '한 살'로 쳐준다. 그 설이 있는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두 살은 두 개의 설을 지난다는 것, 세 살은 세 개의 설이 지난다는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게 죽을 고비를 두번 넘는다, 세번 넘는다는 말과 동의어다. 설의 개념은, 태어난 이후부터 시계를 눌러 재는 시간을 날짜나 달로 환산해 표현하는 서양식 나이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다. 혹독한 겨울을 지닌 나라만이 지니는 생존의 훈장같은 것이 나이다.

한국식 나이가 지금 글로벌한 시대에 불편한 건 사실이고, 그것을 폐기하고 서양식 나이를 쓰자는 주장도 억지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서양식 나이를 채택한 '만 나이'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 오랜 무의식으로 삶의 눈금을 책정해온 우리의 문화유산 같은 것을 영문도 모른 채 내팽개쳐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그것에 영혼없이 동조하는 것은, 삶과 역사를 바라보는 겹눈이 없는 시대의 슬픈 초상일지 모른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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