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1] 공수처 설치 어렵다면 감사원부터 활성화하라

2018-12-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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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감찰, 회계검사 아우르는 감사원=국가최고 감찰기관

고위층 부패방지 제도적 장치 要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제도를 바꿔라. 제도를 개혁하면 의식도 개혁된다. 먼저 의식개혁이 된, 깨어난 소수의 엘리트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제도개혁을 하면 자연히 민중들의 의식도 개혁될 것이다. 앞으로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의 칼럼 '新경세유표'를 통해 우리나라 곳곳의 개혁이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국가를 패망으로까지 몰고간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와 맞물릴 때는 더 위험하다.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초대형 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검찰만 바라본다. 그러나 부패 방지 책무를 다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국가기관이 있다. 바로 감사원이다. 감사원 기능을 제대로 살려야 대형비리를 사전 예방할 수 있다.

중국대외우호협회는 매년 11월 필자를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국제회의에 초청해왔다.
중국 측은 필자를 황송하게도 항상 한국대표단 일행 중 제1인자 혹은 VIP급으로 우대해 왔다. 기라성같은 석학과 대가를 제치고 학초(學草, ‘민초’에 대응한 조어)에 불과한 필자에게 과분한 의전을 베푸는 이유는 뭘까 탐문해봤다. 오! 맙소사, 필자의 명함 한 귀퉁이의 한중친선협회 ’감사(監事)’라는 두 글자 덕분이었다.

한중친선협회(회장 이세기 前통일원 장관)가 비록 한국의 대표 대(對)중국 민간교류단체이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감사, 더구나 민간단체의 감사가 무슨 볼일 있는가?

그런데도 필자가 과분한 특별대우를 받은 까닭은 중국에서 ‘감사’는 회계검사원(auditor)이나 직무조사원(inspector)도 아닌 감독관(supervisor)으로 조직 제1인자 버금가는 굉장한 실권자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해 아닌 오해 덕분에 필자는 팔자에 없는 VIP급 의전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측에서 필자를 'Supervisor', 즉, 감독관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필자의 명함에 쓰인 '감사(監事)'라는 두 글자를 'Supervisor'라고 착각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국가주석 연임제 제한 폐지를 제외한 금년 3월 중국 개헌의 최대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중국판 공수처겸 감사원격인 국가감찰위원회(State Committee of Supervisory)을 신설하여 기존의 공산당 감찰기관 중앙기율검사위와 함께 공직자와 지도층 비리척결 사정·감찰 초강력 쌍검체제 구축이다.
 

베이징 북역 인근 대로상에 위치한 국가감찰위원회와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주소:北京市西城區平安里西大街41號)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최고 감찰기관 감사원(監査院,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은 어떠한가?

1993년 2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대쪽 판사’라는 평판에 따라 이회창 전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한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중 최고기록은 YS 대통령 임기 1년차 1993년 2, 3분기 83%이다. 이때 이회장 감사원장을 주축으로 비리공직자 척결, 금융실명제, 역사바로세우기,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등 쾌도난마의 반부패 정책을 밀어붙였다.

감사원의 '감격시대'는 짧았다. 이회창 감사원장이 국무총리로 영전(사실은 임기가 보장되지 않은 좌천(1*))한 1993년 12월 16일부터 오늘까지 정확히 25년간, 감사원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었는지 존재감이 거의 없다.

지금 대한민국 최악의 직무유기 헌법기관은 감사원이다. 검찰을 직권남용 법률기관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원흉은 감사원의 지독한 직무유기 때문이다.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행정부 소속 공직자로서 헌법에 유일하게 임기가 보장된 데다가(4년, 1차한 중임가능), 국가최고 감찰기관으로서의 지위와 직무가 별도의 관(款, 제2절 행정부 제4관), 4개 조문(제97조~제100조), 14개 문단, 376자로 규정된 감사원장(2*)과 감사위원들은 요즘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헌법에 단 한 조문, 한 글자도 없는 ‘청와대 민정수석’은 저토록 눈부신 존재감을 펼치고 있건만.

감사원은 직무감찰(inspection)과 회계검사(audit)를 아우르는 감사(supervise)를 하는 국가최고 감찰기관이다. 헌법에 감사원장의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를 요하며 대통령과 차년도 국회에 세입과 세출의 결산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는 건 감사원이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의미한다. 감사원은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라 공직자의 비위감찰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정관리의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행정감찰권까지 가지고 있다.

비위 공직자에 대해 변상책임을 물리고 징계처분 및 문책의 요구, 시정 등의 요구, 개선 등의 요구, 수사기관에의 고발, 재심의 등의 권한이 있다. 현행 헌법 제100조(3*)에 따라 헌법을 개정할 필요없이 감사원법 개정만으로 감사원의 직무범위를 확대 강화할 수도 있고 비리공직자에 대한 독립수사권과 기소의견 송치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

현재 '언터쳐블' 권력형 부정부패의 임계점에 다다른 우리나라 상황에서 공수처 설치가 최선이다.

하지만 막강한 기득권의 완강한 반대와 여소야대의 현 정국에서 공수처 설치는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다해야 한다. 국정과제와 사회이슈 또는 트랜드가 바뀌어서 차선이 최선이 될 수도 있다.

공수처 신설이 어렵다면 우선 국가 최고사정·감찰기관 감사원이 제 역할과 임무를 필요 충분히 수행하게끔 감사원법 등 관련 법제를 개선하라.

공수처 대신 감사원의 활성화는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 대신 꿩일 수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초들 때문에 망한 나라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망국의 공통분모는 고위층의 부정부패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고위층의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그 작동상태에 따라 달려 있으니 그렇다.

감사원[사진제공=강효백 교수]



◆◆◆◆◆◆주석------------

1*)국무총리와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그러나 국무총리는 언제라도 인사권자인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수 있다. 반면에 감사원장은 대통령의 심기나 정국상황에 관련 없이 임기 4년, 1회한 중임가능, 4년~8년간 헌법으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

2*)헌법상 감사원장 관련 규정은 국무총리의 그것(총 3개조문, 7문단, 151자)보다 양적으로도 많다.

3*)헌법 제100조 감사원의 조직·직무범위·감사위원의 자격·감사대상 공무원의 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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