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6일~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환대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76일 만이었다.
2013년 6월 시진핑 주석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국가주석 취임 후 86일 만이었다.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 서니랜드에서다. 당시 시 주석은 마오타이주를 권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과는 그 때보다 열흘이나 더 빨리 만났지만 음주회동은 없었다.
도청을 우려한 시진핑 주석은 4년 전 서니랜드에서 묵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장소 15분 거리의 리조트에서 묵었다. 골프회동 등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벤트는 없었다. 시 주석은 2015년 공무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로 골프를 부패의 상징으로 여긴다.
중국 측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 형성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예측불가능성 해소라는 소기의 성과와 함께 미·중간 외교안보 대화, 포괄적 경제 대화, 법 집행 및 사이버안보 대화, 사회문화 대화 등 대화 채널의 수와 분야를 확대해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점을 시진핑·트럼프와의 첫 정상회담의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주요2개국(G2) 두 정상의 만남 만으로 양국간 궁극적 국가이익 충돌을 피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두 ‘스트롱맨’의 개인적 신뢰관계가 형성되기도 힘들다.
사실 두 스트롱맨은 네 가지가 닮았다. 독단적 리더십, 철두철미한 자국 국가이익 제일주의, 주류인종민족 중심주의(백인우월, 한족중심), 공격적 적극적 프래그머티즘(실용실리주의)이 그것이다.
지난 10월 13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더글러스 딜런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을 통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대중국 비판연설이 사실상 중국과의 '신냉전'을 선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10월 4일 미국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중국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중국 및 시진핑과의 관계를 우선 순위로 설정했다. 2017년 4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마라라고에 초청했으며 2017년 11월 8일에는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과 회담했다. 지난 약 2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매우 강력한 친분을 쌓아 왔으며 트럼프와 시진핑, 두 사람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왔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다."
"그러나 중국은 정치·경제·군사·선전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중국 정부 전체의 힘을 사용해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 내에 보유한 중국의 이익을 강화하려 시도해 왔다. 중국은 정치·경제·군사·미디어가 독립적이지 않다. 중국은 이 모두를 융합한 힘을 사용해 미국 국내 정책과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개입하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공격적인 시도를 감행해 왔다."
(중략)
"미국 행정부들은 중국에서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다.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재산권의 보장, 개인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인권이 개선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직도 중국인에게 자유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오류는 인류보편적 가치(본질은 서구의 가치)와 중국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할 것이고 일치해야 한다는 예단과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인들의 정치 참여 욕구가 커져 조만간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제2의 톈안먼 사태가 터져 구소련과 동유럽의 전철을 밟을 거라고 공언해왔다. 그들과 그 앵무새들은 아직도 중국분열론, 중국붕괴론 등을 지저귀고 있다. 30년이 넘도록.
이는 중국과 중국인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생래적 자본주의자 중국인은 부자가 되어도 민주니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더 ’큰 부자‘가 되길 원할 뿐이다.
지난 40년간 중국은 1만번도 넘게 쪼개졌고, 1000번도 넘게 망했다. 대만과 티벳은 100번도 넘게 독립했다. 미·중전쟁은 1000번도 넘게, 3차세계대전은 100번도 넘게 발발했다. 단, 미국과 서구 일본 홍콩 등의 매체에서만.
올 들어 세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미·중 무역전쟁‘의 귀추는 어떠할까?
향후 1~2년간 미·중 관계의 상대적 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단, 치킨게임처럼 극단적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중 양국 위기관리 메커니즘은 쌍방의 분쟁과 마찰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역분규 등 국가이익, 세계관, 의식구조 등 차이로 양국 간 구조적 모순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옛 소련이 해체된 후 세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삼각형 질서로 편성돼 왔다. 그러나 근래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는 삼각형과 원(圓)형의 두 세력으로 재편되고 있다. 반만년 노대국의 중화사상은 한마디로 중국이 원형의 중심에 위치에 있다는 자부심 충만한 세계관이다. 삼각형의 정점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미국, 원의 중심 위치를 회복하려는 중국, 이들 G2 접점에 위치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은 현대 정치·군사·안보 면에서 미국과 가장 밀접한 나라면서 역사·지리·경제·문화 면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다. 피해의식, 사대주의, 종일숭미(從日崇美) 의식에서 벗어나 G2를 잘 활용한다면, 이는 우리의 약점이긴커녕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보적 강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혼내줄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미국을 혼내준다? 어림없다! 그러니 어느 한 쪽만 편들어 다른 한쪽은 척지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되풀이 하지 말자. `
한국에 미·중 양국은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택해야 하는 대체재가 아닌, 함께할 때 더 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보완재와 같은 존재다. '친미반중이냐, 반미친중이냐' 하는 식으로 택일에 집착하기보다는 '용미용중(用美用中)'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즉,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중심에 위치하는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대립적으로 쟁패한다는 뜻이 담긴 'G2(GroupTwo)'를 한·미·중 공동협력의 'C3(Cooperation Three)'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미·중 양국의 이익이 교차하는 공통분모를 탐색 포착하고, 거기에 한국의 국익을 착근, 삼투하게끔 창조적 외교력을 발휘해 나가야 한다. 이래야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남북통일의 초석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