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 중국 개혁·개방 40년 성공비결

2018-10-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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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제도 개혁

덩샤오핑의 신의 한수: 종교·신앙의 분리

鄧-江-胡-習으로 이어지는 '계왕개래'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중국은 세 차례 크게 변신했다. 첫째는 1911년 쑨원(孫文)의 신해혁명으로 제국에서 공화국인 중화민국으로 변신한 것이요, 둘째는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회주의 독재정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변신한 것이요, 셋째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자본주의 독재정 개혁·개방 중국으로 변신한 것이다. 

1978년 12월 18일 역사적인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3중전회)가 베이징에서 개최됐다. 중국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은 이날 각본에 없던 연설을 통해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개혁·개방의 근본이념을 제시했다.

이 연설에서 덩은 기존 문헌에 있는 내용을 무조건 옳다고 하며 맹신하는 태도, 상부 지시를 분석·검토도 안 하고 맹종하는 사상의 경직성을 신랄히 비판했다. 대신 종합 국력의 증강, 생산력의 발전,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도 과감히 수용하는 해방사상,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건설을 역설했다.

사실상 11기3중전회는 계급투쟁에서 경제건설로의 대전환, 문화대혁명 유산의 철저한 폐기 등 ’발전이 진리'라는 개혁·개방 노선의 확정을 선언한 것이다. 1949년 10월 1일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생일이라면, 1978년 12월 18일은 '재생일(再生日)'이다. 중국이 죽게 됐다가 다시 태어난 날이란 얘기다.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제도 개혁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세월이 탄환처럼 지나갔다.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지난 40년간 중국은 연 평균 8.6%(1979년부터 2008년까지는 9.8%)라는 사상 유례없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왔다. 2017년 말 기준,  GDP(구매력 기준), 수출액, 노동력, 외환·금 보유고, 에너지 생산력, 에너지 소비력, 모바일폰 보유대수, 인터넷 사용인구, 고속도로 총연장, 고속철 총연장 등 무려 11개 주요 경제지표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8월 웨이자닝(魏加宁) 국무원 금융정책연구중심 연구원은 한 기고문에서 "중국 개혁·개방 40년 최고 성공비결은 한 마디로 제도 개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40년 중국 질주의 원동력은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도화해 강력하게 실천한 데 있다.

중국은 대외무역법, 외국인투자법, 기업법, 지식재산권법, 세법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발한 법제 개혁을 이뤄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제도 개혁은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 관리나 운영 방식도 포함한다. 국가적 차원의 거시적 제도화나 기업적 차원의 미시적 제도화가 '사회주의 시장경제=공정한 자유경쟁'으로 나아가는 게 오늘날 중국 질주의 근원이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총설계사로 숭앙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제창한 ‘먼저 부자가 되어라’는 선부론(先富論), ’가난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며 노 대국의 방향을 ‘우향우’로 확 돌린 개혁·개방 정책노선 등이 단지 슬로건이나 구호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덩샤오핑은 자신의 개혁·개방 이론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끔 하는 획기적인 제도적 장치를 창조해 강력히 집행했다. '그는 사회주의 붉은 바다'에 '자본주의 푸른 섬'을 건설한 경제특구 제도를 비롯해 사유재산 보호와 외자기업의 보호와 장려를 헌법 조문으로 명문화하고 사유재산의 축적이 가능하게 한 상속법 등을 제정했다.

◆덩샤오핑의 신의 한수: 종교·신앙의 분리

이 대목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덩샤오핑의 ‘신의 한수’를 소개하겠다. 1982년 12월 덩은 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기존의 ‘종교의 신앙과 불신할 자유와 무신론을 선전할 자유’에서 종교와 신앙을 구분해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중국 헌법 제36조)’로 개정했다. 덩샤오핑은 감히 종교와 신앙을 구별함으로써 공산당원은 종교를 가질 수 없었던 전통 공산주의 이론의 올가미를 혁파했다. 중국 공산당 당원의 신앙은 당연히 마르크스레닌주의여야 하지만 신앙과 별도로 기성 종교를 가질 수 있도록 원칙상 허용한 것이다. 실제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불교·도교·기독교·이슬람교 등은 종교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롯한 내세가 없는 유가사상·토착신앙 등은 신앙으로 따로 구별하고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중국 최고 부자이자 2017년 세계 슈퍼리치 18위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은 공산당원(제17기 전국공산당대회 대표 역임)이면서 불교단체와 행사에 거액의 기부를 하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이는 물론 중국 공산당원이 과거의 이념집단에서 엘리트 집단으로 변화했기에 가능한 현상이기도 하다. 

◆鄧-江-胡-習으로 이어지는 '계왕개래'

중국 역대지도자[사진=아주경제DB]



누군가 필자에게 ‘제도 개혁 이외에 40년째 중국이 계속 질주한 또 다른 비결을 말해보라'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과거를 계승해 미래를 열자, 계왕개래(繼往開來)! 저들은 그 말에 담긴 지혜를 잘 알고 있으며, 거기에서 역사의 원동력을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게 저들이 승승장구하는 비결”이라고. 

굳이 풀이하자면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초지(初志)를 잃지 않으면서 새 길을 개척한다는 뜻이다. 계왕개래란 사자성어는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으로 이어지는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휘호이자, 1992년 제14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부터 2017년 10월 19차 당대회까지 빠짐없이 내걸린 표어이다.

실제 저들의 정치문화가 그러하다. 문화혁명 당시 문자 그대로 자본주의를 향해 달려가는 ‘주자파(走資派)’로 숙청당했던 덩샤오핑은 재집권하자 '우향우'로 내달렸다. 그러면서도 전임자 마오쩌둥을 전면 부정하는 건 단호히 거부했다. 그의 선택은 절묘했다. 마오쩌둥의 좌파적 과오는 반성하되 대륙을 통일하고 신중국을 건국한 초대 주석의 공적은 계승·발전시키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마오쩌둥의 비판적 계승자라고 자리매김했고, 계왕개래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개혁·개방에 성공했고, 현대 국가 건설에 착오가 없었던 것이다.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들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의 새 중국은 그 길을 질주했고, 지금도 그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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