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백화점에서 옛날 맛의 단팥빵을 사 먹은 적이 있었다. 어릴 땐 그리 귀하고 맛있었던 단팥빵에 대한 추억으로 한번 사 먹어 보았으나 옛날만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빵맛이 변하였을까? 그것은 나의 입맛이 이제는 너무나 많은 맛있는 것들로 고급화된 탓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단팥빵을 먹었던 어릴 적 기억은 생생하여 잠시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단팥빵을 먹을 때 친구들과 많이 논쟁했던 것은 맛있는 단팥 부분부터 먹고 빵 부분을 나중에 먹느냐 혹은 빵 부분을 먼저 먹고 나중에 맛있는 부분을 먹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맛은 없지만 빵 부분을 먼저 먹고 나중에 맛있는 단팥 부분을 먹었다. 그 당시 대부분 우리들은 어렵고 힘든 일들을 먼저 하면 나중에 더 좋은 것이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고, 그런 것이 빵을 먹는 습관도 그리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을 생각해 보면, 과연 정부가 일자리나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데 가장 어렵고 힘든 부분을 먼저 해결하려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2018년 10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미래차, 반도체 등 신산업분야에서 2022년까지 140여개의 프로젝트에 125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도하여 민간에서 9만2000개의 미래형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예산만을 이용하여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과연 지난 몇 년간 벤처기업들을 육성한다면서 진행되었던 수많은 경진대회를 통하여 입상한 그 많은 벤처기업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각 은행들이 앞다투어 성대한 행사를 하면서 오픈했던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지난 몇 년간 핀테크 분야의 보안 기술을 개발하여 핀테크 벤처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하다 접고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한 후배의 고백은 기가 막히다.
이런저런 스타트업 대회에서 입상도 하곤 하였지만 막상 제공되는 것은 창업 공간인데, 이는 요즈음 넘칠 정도로 많다. 실제 필요한 것은 기술을 적용할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것인데, 기존의 규제들로 은행들이 적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경진대회를 열고 창업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예산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닌가. 벤처기업들이 실질적인 투자를 받고,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규제를 풀어서 새로운 기술들이 적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벤처 육성의 빵 부분과도 같은 일이 아닌가.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 잘 안 되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정부가 기회만 주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는 산업 분야도 있다. 바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분야이다. 한 대학 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2022년까지 블록체인 산업은 3만6000개에서 최대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정부가 암호화폐 기반의 사업을 인정한다면, 5만3000개에서 최대 17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상했다. 정부는 블록체인을 사기성의 문제가 있는 산업으로 간주하고 기업 활동을 금지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성장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정부가 혁신적 산업을 수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폐해나 초기의 혼란 등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 또한 빵부터 먹는 불편함을 피해 가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게임 산업은 IT 분야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내고 있는 분야인데, 게임 업체들도 지난 20년 이상 정부의 외면과 규제 시달리고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기존의 기술들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산업 분야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 분야에 한번도 적용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기술들이다. 이러한 신산업과 신기술이 확산되고 국가경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를 풀고, 혹은 아예 규제가 없는 분야는 네거티브 방식 규제로의 혁신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4차 산업 육성의 빵 부분과 같아 당장 생색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결단이 있어야 신산업 육성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단팥을 후에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의 산업은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로의 변화(Digitial Transformation)가 일어나면서 디지털 경제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소위 사물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세상, 즉 사물경제시대(Economy of Things)를 맞고 있다. 이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의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의 인간 중심의 경제활동을 넘어서 사물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디지털 세상에서의 강국이 되느냐 혹은 약소국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냐는 규제들을 얼마나 과감하게 제거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지금은 맛없는 빵 부분을 먹지만 우리 후손들에게 단팥을 물려줄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