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실에서 일할 때다. 태극기 부대를 자주 접했다. 여의도로 향하는 출퇴근 지하철 또는 국회 정문 앞에서다. 군복을 입고 검은색 선글라스, 태극기를 손에 든 그들을 보면 한심했다. 집에서 손주 돌볼 나이에 뭐하는 건가 싶었다. 볼썽사나운 차림도 그렇지만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딴 나라 사람이었다. 진보진영은 태극기 부대를 정상적인 사고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수구꼴통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심리학에서 보자면 그들도 딴에는 확신에 찬 신념(?)을 실행하는 이들이다. 태극기 부대가 태극기 부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마이어스와 도로시 비숍은 이를 확증편향으로 설명했다. 다른 말로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다. 밀폐된 방안에서 소리를 내면 자신에게 돌아온다. 끼리끼리 모여 같은 정보를 주고 받다보면 특정한 정보에 갇힌다. 마이어스와 비숍은 인종차별에 대한 편견을 주제로 실험을 했다. 인종차별 편견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으로 나눠 토론을 시켰다.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측정했다. 결과는 편견이 강한 집단은 편견이 한층 심화됐고, 편견이 낮은 집단은 더 낮아졌다. 편향된 정보를 주고받은 결과다. 태극기 부대가 보여준 퇴행적 행태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도 청와대 대응은 미지근하다. 언론보도에 마지못해 찔끔찔끔 해명을 내놓고 있다는 비난이 뒤따르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꼬리를 물까?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돼 있고, 끼리끼리 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 토대 위에서 출범했다. 촛불 지지와 열망을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이 불가피했다. 이는 ‘청와대 정부’라는 달갑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청와대로 권력이 집중된 데다 반향실 효과가 더해지면서 기강해이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끼리끼리 문화와 동조 현상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 책임론을 둘러싼 옹호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사퇴를 거론하자, 다른 의원들은 적극 방어하는 양상이다. 조 수석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수긍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조국은 촛불 정권의 상징이다” “끝까지 노무현 대통령 곁을 지켰던 문재인 비서실장처럼 조국 수석도 끝까지 대통령 곁을 지켜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낮 뜨겁다. 촛불 정권과 연계시키려는 의지도 가상하고, 의리론은 또 뭔지 싶다. 공직은 책임을 무겁게 여기는 자리다. 특별감찰반 한 사람 책임을 물어 전원을 소속 청으로 돌려보냈다. 다른 잣대는 납득하기 어렵다.
뉴질랜드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회견도 국민들 눈에는 마뜩치 않다. 국민들은 외교 치적 못지않게 국내 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 견해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경제와 국내 문제는 질문을 받지 않았다. 아마 청와대 비서진들이 조언했을 게 분명하다. 김정은 답방 가능성이란 이슈가 묻힐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반부패비서관실 비위 사건은 국정운영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지지율 하락도 우려된다. 민정비서관을 지냈던 조응천 의원이 사퇴론을 거론한 것은 이런 정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당 정치공세로만 일축하는 궤변은 오만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향실에서 나와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반향실 시각도 아니고, 야당 정치공세도 아닌 국민들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집권 초반에 터진 위기라는 점은 오히려 다행이다. 느슨한 거문고 줄을 고쳐 매는 ‘해현경장(解弦更張)’ 계기로 삼는다면 지지를 이어갈 수 있다. 특정인 경질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핵심을 간과한 한가한 입씨름일 뿐이다.
카스 R 선스타인 교수는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는 책에서 “영향력 있는 행위자들이 일치된 목소리로 확신에 차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지금 청와대에 필요한 것은 동조와 침묵, 지나친 확신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 잡힌 의견을 내는 ‘악마의 대변자’다. 그럴 때 집단사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민주당 집권 20년은 끊임없는 자기검증과 긴장 위에서 시작된다. 반향실 밖을 나와 고민해야 한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태극기 부대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