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바이주 우량예 만들던 이곳… 이차전지의 수도로 불리는 까닭

2023-09-07 13:40
  • 글자크기 설정
세계 1위 이차전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CATL 전경 ⓒ 임병식
[세계 1위 이차전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CATL 전경. ⓒ 임병식]



이차전지 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전략 산업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초 ‘새만금 이차전지 투자 협약식’에서 “이차전지는 반도체와 함께 우리나라 전략 자산의 핵심”이라며 다각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앞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북 새만금과 포항, 울산, 청주를 이차전지 특화산업단지로 지정하고 이차전지 산업 육성을 위한 닻을 올렸다. 산자부는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기업들은 앞다퉈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관련 기업 주가도 날개를 달았다.
이차전지 시장은 온실가스 감축과 글로벌 전기 자동차 성장세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2년 10월 협약식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생산을 2035년 완전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선진국은 2035년, 개발도상국은 2040년까지 생산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현대자동차도 유럽 시장에서는 2035년부터,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는 2040년부터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올해만 1210억 달러(약 160조원)를 예상한다. SEN리서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를 2028년 3030억 달러, 2035년에는 6160억 달러(약 815조원)로 전망하고 있다. 증권업계도 2025년이면 이차전지 산업은 반도체 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차전지 산업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는 중국이다. 중국은 테슬라와 손을 잡고 LFP 이차전지(리튬인산철)에서 세계 1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은 3원계 이차전지(NCM, NCMA, NCA)에서 높은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LNF, 에코프로, 포스코홀딩스가 대표 주자다. 일본 도요타는 이보다 앞선 전고체 이차전지에서 선점을 계획하고 있다. 도요타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선언했다. 중국 이차전지 산업기지로 발돋움한 쓰촨성 이빈(宜賓)을 통해 이차전지 산업 추세를 가늠할 수 있다. 이빈은 중국 이차전지 분야 심장과 같은 곳이다. 세계 1위 CATL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이차전지 기업이 가동 중이고 중국 정부는 ‘이차전지 수도 이빈’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삼강신구 이빈 톨게이트 부근에 위치한 삼강신구 신능원산업단지를 알리는 이정표 ⓒ 임병식
삼강신구 이빈 톨게이트 부근에 위치한 삼강신구 신능원산업단지를 알리는 이정표. ⓒ 임병식

쓰촨성 이빈은 청두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다. 청두에서 이빈까지 350㎞에 이르는 고속도로는 새로운 성장 축으로 주목받는다. 바이주 우량예(五粮液)를 실어 나르던 고속도로는 어느덧 전기차와 이차전지 물류 도로로 바뀌었다. 이빈시는 지난해 처음으로 세계 동력배터리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올해(6월 8~14일) 2회 대회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초청 게스트만 1700명, 현장 참관 3000명, 온라인 시청 2500만명으로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대회가 끝난 지 두 달여 지났지만 컨벤션센터는 여전히 ‘세계동력배터리대회’ 알림판을 떼지 않고 있다.

이번 대회 캐치프레이즈는 ‘새로운 녹색 동력, 새로운 세계 에너지’다. 중국 내륙에 위치한 이빈시가 세계 동력배터리대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차전지 생산과 공급 체인망에서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이빈은 입지가 뛰어나다. 쓰촨성과 윈난성, 구이저우성, 충칭시 등 4개 지역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있다. 이빈을 지나는 고속도로만 6개다. 올 연말에는 청두~쿤밍 고속철까지 개통한다. 또 이빈은 중국에서 가장 긴 창장(長江, 6300㎞)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 때문에 공업용수와 전력을 확보하기 용이하다. 이빈에서 출발한 컨테이너 화물선은 창장을 타고 상하이까지 연결된다.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빈 삼강신구(三江新區) 산업단지에는 세계적인 이차전지 생산업체와 완성차업체가 가동 중이다. 최근 6~7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빈은 이빈시에서 생산한 이차전지로 전기차를 만드는 체인망을 구축했다. 중국경공업연합회와 중국전지산업협회는 이빈을 ‘중국 동력배터리 수도’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빈IC를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곳이 삼강신구(三江新區) 신능원산업단지다. 조성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100% 분양을 마쳤다. 신능원산업단지는 이차전지 산업단지로 특화했다. 왕복 10차로인 공단대로에 들어서면 세계 1~2위를 다투는 이차전지 업체와 완성차업체가 줄지어 있다.

 
삼성인재개발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CATL 인재센터 건물 ⓒ 임병식
삼성인재개발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CATL 인재센터 건물. ⓒ 임병식
CATL 인재개발원이 위치한 언덕에서 바라본 CATL 공장 전경 사진에 보이는 규모의 공장단지가 주변에 6개 블럭에 달한다 ⓒ 임병식
CATL 인재개발원이 위치한 언덕에서 바라본 CATL 공장 전경. 이 정도 규모인 공장단지가 주변에 6개 블록에 달한다. ⓒ 임병식

세계 1위 닝더시대(CATL)와 2위 비야디(BYD)를 비롯한 이차전지 업체가 대표 주자다.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업체 리보신소재(LIBODE)는 배터리 생산 체인망에 포함된 기업이다. 인접 단지에는 전기자동차 완성차 업체가 들어섰다. 비야디(BYD)와 아이안(AION), 지리자동차, 테슬라 중국 등이다. CATL은 자사 인재육성센터 언덕에 조망대를 설치했다. 이곳에 오르면 CATL 공장을 볼 수 있다. CATL 공장 규모는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넓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건 일부분이며 자동차로 돌아야 전체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이차전지와 관련해 완벽한 생산·공급 체인망을 구축한 삼강신구는 공급과잉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2차 동력배터리대회 기간 중 체결된 계약만 64개 프로젝트, 1063억 위안(약 19조2400억원)에 달한다. 이빈시는 계약이 계획대로 실행되면 연간 생산 1800억 위안(약 32조5800억원), 연간 세수 80억 위안(약 1조4500억원), 신규 고용 창출 2만7000명을 기대하고 있다. 우량예 바이주(白酒)를 만들던 이빈시가 이차전지를 발판으로 도약할 날이 머지않았다. 도시 이미지도 우량예에서 이차전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빈은 애초 농향형 바이주 우량예로 유명한 곳이다. 우량예는 마오타이와 함께 중국 명주 1~2위를 다툰다. 이빈시 재정 수입에서 우량예는 한때 70%를 차지했다. 지금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65~67%에 달한다. 하지만 이차전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제 이차전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빈을 이차전지 핵심 기지로 육성하려는 의지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이빈시를 방문했다. 국가주석이 내륙 소도시를 찾은 건 이례적이다. 시진핑은 신능원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지도를 작성하는 이빈시를 돌아봤다. 대학성(大學城)은 시 주석 방문만큼이나 이례적이다. 이빈시는 이차전지와 전기차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학성을 조성했다. 삼강신구 주변에 신도시를 조성하고 이빈대학을 포함해 11개 대학 캠퍼스를 집단화했다. 11개 대학을 한곳에 건설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5년에 불과했다. 대학을 한곳에 유치하고 학생과 교수들이 묵는 주택단지와 편의시설을 집적화했다.

 
대학촌 풍경 11개 대학이 몰려 있는 대학성 인근 풍경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음식점을 비롯한 편의 시설이 잘 구축돼 있다 ⓒ 임병식
11개 대학이 몰려 있는 대학성 인근 풍경.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음식점을 비롯한 편의 시설이 잘 구비돼 있다. ⓒ 임병식]

우리나라 대학촌과 같은 이빈 대학성은 이차전지 기지를 실감케 하는 공간이다. 대학성에는 이빈대학을 비롯해 쓰촨과학기술대학, 서남대학, 쓰촨이공대학 등 11개 대학이 몰려 있다. 이빈시는 대학 유치를 위해 대규모 캠퍼스 부지를 제공하고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장학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된 산업인력은 안정적으로 공급돼 추가 기업 유치라는 선순환을 유발한다. 청년 인구가 유입되면서 도시는 활기를 띠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올해 첫 졸업생이 나온다. 쓰촨과학기술대학 정문 앞 아파트 단지와 식당가는 방학 중임에도 젊은이들로 분주하다. 안정적인 인력 공급은 국내 이차전지 특화산업단지가 주목할 부분이다.

 
리보신소재에 재직 중인 삼성SDI출신 김종희 부사장
리보신소재에 재직 중인 삼성SDI 출신 김종희 부사장. ⓒ 임병식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생산하는 리보신소재(LIBODE)유한공사에는 삼성SDI 출신 김종희 부사장이 재직 중이다. 김 부사장은 중국 현지에서 본 이차전지 산업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김 부사장은 “2017년 리보신소재가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다. 5년 만에 100% 가까이 분양됐고 세계 1위 CATL과 2위 BYD가 둥지를 틀 만큼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지방정부 지원도 파격적이다. 리보신소재만 해도 시에서 연구동을 지어주고 땅도 5년 무상 임대다. 또 11개 대학을 단기간 유치하고 산업 체인망을 구축하는 것을 보면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김 부사장은 “세계적으로 배터리 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지만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계기로 한국 입지가 확대되는 등 시장구도가 재편될 여지가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 IRA, 유럽원자재법 시행으로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기업이 배터리 소재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