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에 우리 기업이 직접 진출해 경영하는 것은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수에 성공한 뒤 최근 해외 프로젝트를 공동수행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죠.”
건설사업관리(CM·Construction Management) 기업인 '한미글로벌'의 전신인 '한미파슨스'는 국내에 최초로 CM을 도입한 곳이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은 1996년 한미파슨스 사장을 지낸 이후 지금까지 CM업계에서 리더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을 넘어 미국 등 선진국 기업과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김 회장은 지금도 유럽과 호주 등으로 진출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16일 서울 강남구 한미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한미글로벌을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한미글로벌은 지난해 미국의 건설전문지인 ‘ENR’이 발표한 전 세계 프로젝트관리(PM·Project Management) 및 CM 기업 중 매출액 기준 세계 12위(미국 제외)에 올랐다. 김 회장은 “이것이 바로 한미글로벌이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는 글로벌기업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가 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건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회장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같은 대형 참사를 막고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실행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선진건설사업관리 방식을 도입하게 됐다”며 “하지만 최근 정부에서 건설용역업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건설사업관리와 감리를 CM이라는 동일한 명칭으로 묶어 국내에서 CM과 감리의 역할이 같은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한미글로벌은 전 세계 55개국에 진줄해 있다. 특히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아카리아한미’는 김 회장이 공들이고 있는 업체다. 그는 “아카리아한미는 신도시 PM 등의 분야에서 지금까지 많은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며 “최근엔 아카리아한미에 인력을 못 댈 정도로 일이 많아서 채용공고를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는 유럽·일본·호주 등 선진국 시장 공략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지기업과 합작전략, 인수·합병을 통한 진출전략, 현지 자회사를 설립하는 직접 진출전략 등 현지 여건과 사정을 감안해 공략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미글로벌이 해외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미국 기업을 인수하면서다. 2011년 한미글로벌은 미국 종합엔지니어링 업체인 ‘오택(OTAK)’의 지분 60%를 확보했다. 이후 오택은 지난 1월 미국의 CM 및 PM 업체인 ‘데이 씨피엠(DAY CPM)'을 인수했다. 주로 공공건축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는 데이 씨피엠은 1조 달러(약 120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약속한 트럼프 정부의 수혜 기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김 회장은 “오택을 인수한 뒤 미국의 경기 호전과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인프라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오택을 활용해 해외 수주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며 "향후 선진국 시장 진출은 오택이 중심이 돼 나가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목표는 해외 시장 진출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과거 북한에 진출했던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미글로벌은 이미 평양에서 조용기 심장병원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통일을 대비해 효과적인 북한의 인프라 개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자회사인 오택이나 전략적 제휴 업체인 중국 ‘건축공정공사’, 일본 ‘스미즈건설’ 등 관심 있는 해외 기업들과 공동진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며 “현재 해외 대규모 신도시개발 프로젝트에서 PM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북한에서도 이런 경험과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행복경영’이 선순환 구조의 시작”··· "CEO 승계 프로그램 통해 지배구조 혁신에 도움되길“
김 회장이 갖고 있는 경영 철학은 ‘행복’이다. 자신이 노조위원장이라고 생각하고 직원들의 고충을 살펴보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한미글로벌은 ‘행복경영’을 기업문화로 정착시키고자 한다. 구성원이 행복하면 결국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내고, 그 혜택이 구성원과 주주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실현을 통해 행복한 직장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미글로벌은 10년 근속 시(임원 5년) 직원들에게 2개월의 유급 휴가를 주고 있다. 김 회장은 “이와 별도로 5년 근속한 경우 1개월의 유급 휴가를 주는 ‘리프레시(Refresh) 휴가’도 있다”며 “산전·산후 출산휴가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인원 수에 관계없이 지급하는 학자금 제도 등 가족친화적인 제도를 기업문화로 삼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이라고 해서 직원들이 해외에서 살아보는 프로그램을 검토 중이다. 한 달 동안 살아봐야 그 도시의 속내를 알 수 있다"며 "최근엔 세계일주 여행권까지 생각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행복’에 초점을 둔 기업답게 그는 직원들과 함께하는 사회공헌 사업도 펼치고 있다. 김 회장은 “1996년 창사 이후 지금까지 23년 동안 전국 40여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구성원들과 함께 자본금을 마련해 설립한 복지법인인 ‘따뜻한동행’은 CM이라는 우리의 특성을 살려 복지시설을 개·보수하고 있다. 현재 직원들이 급여의 1%를 반납해 활동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사회공헌 분야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그는 “이런 활동을 하던 중 건설 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돼 ‘행복건설상담소’라는 건설 분쟁 무료 컨설팅을 시작하게 됐다”며 “주로 개인이나 복지기관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차세대 건설리더 키우기를 통해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질도 높여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통일을 대비해 탈북민 차세대 리더 양성 사업을 중점으로 육성할 것”이라며 “6·25 참전국을 돕는 글로벌 지원사업도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도 현직에서 활발하게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김 회장이지만 현재 그는 'CEO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후계자를 찾고 있다. 그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기업의 책임자인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이런 필요성에 공감해 대내외 인사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승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포인트를 둔 부분은 가족 승계보다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후계자를 선정하고, 그 성과를 평가해 검증하고 오너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 CEO로서 승계를 최종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지금은 시간이 걸리지만 계속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혁신에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국내 강소기업들에 자신감을 갖고 세계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국내 건설제도와 세계 기준이 많이 다르니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직원이 10명밖에 되지 않는 기업이라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면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따내곤 한다”며 “한미글로벌도 세계 10위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계속 꿈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