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은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올해는 107주년이다.
중국에서는 '신해혁명 기념일'로, 대만에서는 '쌍십절(雙十節)'로 부른다.
그해 후베이성 우창에서 시작된 봉기는 중국 전역으로 번져 청나라가 무너지고 쑨원(孫文)을 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전제군주 체제가 끝나고 공화정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쑨원을 국부로 추앙하는 대만은 쌍십절을 건국 기념일로 삼았다.
중국 공산당도 신해혁명의 의미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6년 쑨원 탄생 150주년 기념식에서 "쑨중산(中山·쑨원의 호) 선생은 민족의 영웅이자 애국주의자, 민주 혁명의 위대한 선구자"라고 치켜세웠다.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원은 쑨중산의 혁명 사업에 대한 가장 확고한 지지자, 협력자, 계승자"라며 "그의 위대한 구상이 공산당의 영도로 경제·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이미 실현됐다"고 주장했다.
전제주의를 몰아낸 쑨원의 충실한 계승자를 자처한 시 주석이 '시황제'로 불리며 1인 체제를 강화하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꿈꾸다가 무역전쟁이라는 역풍을 맞아 위기에 몰린 현 상황은 참 아이러니하다.
신해혁명 기념일인 이날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복' 운운하며 중국에 대한 위협을 이어갔다.
미국 상무부 기준으로 5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 무역적자가 획기적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당초 공언한 대로 267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매길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중 양국은 각각 2500억 달러와 1100억 달러 규모의 상대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중국산 수입품 전체에 관세를 물리는 셈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합의를 원하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25년 동안의 일방통행을 양방향 통행으로 만들고 미국도 이익을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국 갈등은 무역을 넘어 정치·국방·인권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이 뜬금없이 중국의 미국 중간선거 개입설을 제기한 뒤 마이크 펜스 부통령까지 원색적인 비난에 나섰다.
펜스 부통령은 "중국은 트럼프가 아닌 다른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며 "미국의 민주주의에 간섭하는 베이징의 해로운 영향력과 개입을 계속 파헤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표적으로 삼은 곳의 80%가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지역"이라며 "중국이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러시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이 관세로 미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역 마찰은 미국이 일으킨 것"이라며 "중국의 반격으로 미국 내에 갈수록 많은 산업과 지역이 타격을 받는 것은 특정 정파에 대한 지지 여부와 무관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루 대변인은 "미국 지도자의 견강부회와 같은 지적은 미국 내 언론과 각계 인사들도 불가사의하며 황당하다고 여긴다"며 "어떤 국가가 걸핏하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지는 국제사회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맞섰다.
미국이 대만과 남중국해 인근에서 군사 활동을 벌이고, 중국의 지하 교회 폐쇄와 신장위구르자치구 무슬림 강제 구금 등을 거론한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너나 잘해' 식의 유치한 공방과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면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8일 베이징에서 회동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벌인 설전에서 양국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왕이 국무위원은 "미국은 끊임없이 무역 마찰을 고조시키고 대만 문제 등에 관해서도 중국의 권익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있다"며 "이러한 잘못된 행위를 즉시 멈출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은 "양국은 근본적으로 의견이 다르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이 취해 온 조치들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도 했다.
개혁·개방 첫해인 1978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6배 급증했다. 1인당 GDP는 40배가 늘었다. 공업생산액은 173배, 무역액은 199배, 예금액은 무려 3090배가 증가했다.
1978년 1억67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외환보유고는 지난해 3조1399억 달러로 세계 1위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59%. 지난해는 6.9%를 기록했는데, 세계 평균 성장률 3.7%의 2배 수준이다.
공산당 창건 100주년인 2021년에 1인당 GDP 1만 달러로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에 진입한다는 목표는 조기 달성될 가능성이 높다.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1인당 GDP 5만 달러 안팎의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혁·개방 40년의 빛나는 성과를 자축하며 시진핑 2기 체제의 화려한 막을 올려야 할 올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잔칫상에 재를 뿌렸다.
시 주석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상황의 연속이겠지만 자초한 측면이 크다.
자신감의 발로였을까.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열린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장에 명기했다.
왜 신시대인가. 덩샤오핑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시진핑이 이끄는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시 주석은 기세를 몰아 올해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넣고 자신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이뤄냈다.
지난해 당대회 때 시 주석은 '4개의 자신감(四個自信)'이라는 생소한 표현을 처음 쓴 뒤 최근까지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노선·이론·제도·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의미한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로 도약하면서 민주주의 타령이나 하는 서구를 따라잡거나 넘어섰다는 자체 평가를 내린 것이다.
덩샤오핑이 당부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다.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중국의 강변은 미국 등 서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대중 압박 혹은 공세를 추동하는 유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6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진핑이 다시 정의한 중국제조'라는 보도를 내놨다.
"개혁·개방 40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됐다. 앞으로는 제조대국에서 제조강국으로 바뀌어야 한다. 글로벌 가치 순환 고리의 상단을 차지해야 한다. 이것이 중국의 새 기회이며 세계의 새 기회다."
무역전쟁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미국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꼴'이었다.
중국 경제 석학인 웨이제(魏杰) 칭화대 교수는 미국이 무역전쟁을 일으킨 배경으로 △중국 체제가 미국 체제를 위협하는 데 대한 우려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 강화 등을 꼽았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비등한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가 결합돼 무역전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웨이 교수는 "미국 체제의 기초는 사유제와 다당제, 삼권분립, 개인주의 등으로 중국이 강조하는 공유제, 집단주의 등과 다르다"며 "중국이 일대일로와 중·아프리카 협력포럼, 상하이협력기구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미국의 걱정도 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과학·기술 분야를 선도했지만 중국이 이를 전복할 만한 원천·핵심기술을 확보해 나가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미·중 갈등은 무역전쟁으로 시작돼 패권 경쟁 양상을 보이며 점차 그 본질로 다가서는 분위기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환율전쟁을 일으키고, 중국이 이에 맞서 미국 국채를 대거 매각하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이쯤 되면 파국이다.
쑨원과 덩샤오핑이 대미 항전을 진두지휘하는 시진핑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