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훨훨 날고 있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3일(현지시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18%로 심리적 저항선인 3%를 훌쩍 웃돌았고, 30년물은 3.34%에 도달했다. 각각 7년, 4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한 건 이 나라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안전자산'인 국채 수요를 위축시킨 결과다. 투매 바람이 국채 가격을 떨어뜨려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를 띄워 올린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약 12bp(0.12%포인트) 올랐다며, 하루 상승폭이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가장 컸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매우 좋다. 어쩌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고인지 모른다.(기억해.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훨훨 나는 美경제지표…경기낙관론에 시장도 열광
최근 미국 경제지표를 보면 트럼프가 자랑할 만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도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뒤에 가진 회견에서 "미국 경제가 매우 긍정적이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같은 경기확장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기대했다. 연준은 이번 회의에서 올해 세 번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연내에 금리를 한 번 더 올릴 수 있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통화긴축이 부담스럽지 않은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본 셈이다.
이날 나온 지표도 경기낙관론을 뒷받침했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낸 9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경제의 8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경기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달 민간고용도 7개월 만에 가장 많은 23만명 늘어 5일 발표될 공식 고용지표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시장에서는 9월 실업률이 3.8%로 전달보다 0.1%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본다. 예상대로라면, 1969년 이후 최저치가 된다. 연준의 '이중책무' 가운데 하나인 '완전고용'을 달성한 지 오래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1월 실업률은 4.8%였다.
연준은 나머지 책무인 물가안정 목표도 달성했다. 수년째 미미했던 인플레이션 압력에 힘이 실리면서다. 경제가 역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미약하지만, 임금상승세에 모처럼 힘이 실린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덕분에 연준이 물가상승률의 척도로 삼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2%에 도달했다.
그 사이 2016년 1분기 0.4%(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였던 성장률은 지난 2분기에 4.2%로 뛰었고, 뉴욕증시 대표지수인 S&P500지수는 지난해 1월 2200선에서 최근 2900선으로 올라섰다.
◆트럼프 vs 오바마, 경제 성과 논란…전문가들 "반반"
다만 미국 경제가 매우 강력한 성장세를 누리게 된 것이 "내 덕"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에게 백악관을 내준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이 발끈했을 정도다. 그는 지난달 초 미국 일리노이대 연설에서 "지금 경제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들으면 이 회복세가 언제 시작됐는지 생각해 보자"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물려받은 걸 상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경제여건이 충분히 좋아졌기 때문에 트럼프만의 성과랄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 전문지 더힐은 트럼프와 오바마가 모두 잘 지적했지만, 둘 다 틀린 부분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친기업, 친성장 정책을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정치적인 변화는 분명히 (경제에) 영향력이 있다"며 "이 정부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길 바라는 친기업 정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기업감세, 재정지출 확대 같은 친성장 정책과 이에 대한 기대감이 성장세를 자극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다만 일련의 친성장 정책은 효과가 일시적일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무역 정책과 재정적자 확대정책의 부작용도 우려한다. 불라드 총재는 같은 이유로 미국의 성장률이 다시 2%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09년 1월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 이른바 '대침체(Great Recession)'에 빠져 있었다. 같은 해 3분기에 미국 경제가 5분기 만에 다시 성장세를 회복했으니, 트럼프 대통령의 자랑이 눈에 거슬릴 만도 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든, 오바마든 경제적 성과를 놓고 다툴 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둘 다 어떤 경제를 물려받을지 선택할 수 없었을뿐더러, 백악관의 정책보다 정치적 독립성이 뚜렷한 연준의 통화정책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향방을 좌우했다는 이유에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부대변인을 지낸 토미 프래토는 더힐에 행정부의 정책이 뚜렷한 효과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하원 위기는 결국 트럼프 '비호감' 탓?…'침체 경고등'도
어찌 됐든 트럼프 행정부 들어 경제가 더 좋아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기인 2010년 중간선거에서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하원을 공화당에 내주고 2014년에는 상원 다수당 지위마저 잃었다며, 당시 경제 여건이 지금보다 나빴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에 내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인기가 없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성과를 내세우지만, 그의 지지율은 집권 기간 내내 30~40%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막바지에 도달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실물경제학자 모임인 전미기업경제협회(NABE)가 지난 1일 발표한 경제학자 설문조사 결과, 오는 2020년 미국이 경기침체에 돌입할 것으로 본 이가 56%에 달했다. 10%는 내년에 경기침체가 닥칠 것으로 봤다. 3명 가운데 2명이 2020년 안에 침체를 예상한 셈이다. 2021년이나 그 이후에 침체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 이도 33%나 됐다. 설문조사에 응한 51명 가운데 대다수가 몇 년 안에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봤다는 말이다.
경기를 냉각시킬 하방위험으로는 가장 많은 41%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지목했다. 트럼프의 반무역 정책이 미국 경제에 해를 입힐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고금리와 증시의 급격한 하락이나 변동성을 꼽은 이도 각각 18%였다.
미국 경제는 지난 5월까지 성장세가 8년 10개월 지속돼 역대 두 번째로 긴 경기확장 기록을 세웠다. 내년 7월까지 성장세가 이어지면 역대 최장기 확장 기록이 된다.
USA투데이도 최근 미국의 경기침체 신호가 짙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여섯 가지 침체 신호 가운데 제일 먼저 실업률을 꼽았다. 실업률이 워낙 낮아 기업들이 숙련인력을 충원해 생산성을 더 높이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USA투데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불길한 징조로 들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지면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져 성장세를 둔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과거 주기에 비하면 경기확장세가 과도하게 길고, 주요 도시의 주택판매가 줄기 시작한 것은 물론 신용카드 빚과 이에 대한 연체가 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USA투데이는 전통적인 침체 신호인 장단기 국채 금리의 차이(스프레드), 이른바 '수익률 곡선'의 평탄화와 역전 가능성도 문제삼았다. 보통 단기 채권은 장기 채권에 비해 투자 위험이 낮아 금리도 낮은 게 보통이다. 경기침체를 비롯한 위험이 임박하면 단기 채권 금리가 올라 스프레드가 좁아진다. 수익률 곡선이 평탄해지는 셈이다. 신문은 수익률 곡선의 역전이 대공황 이후 모든 침체의 전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금리 스프레드는 최근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