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국내 '빅3'를 포함, 주요 조선소가 위치한 '부산, 울산, 경상도'(부·울·경) 등 지역경제가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예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정부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미봉책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부·울·경, 지역경제 '암울'
16일 한국감정원 부동산 통계를 보면 경상남도 거제시의 주택거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14년 7104건에 달하던 것이 이듬해 5483건으로 20% 넘게 급감한 데 이어 2016년에는 4068건까지 감소했다. 올해 현재는 2125건으로 근래 들어 가장 적은 수치까지 떨어졌다. 주택을 사고 파는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반면 공실률은 높아졌다. 거제가 포함된 경상남도 지역의 상업용 목적으로 이용되는 부동산의 공실률은 2017년 3분기 12%에 불과했으나 올해 2분기에는 16.7%까지 치솟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상남도에서 소득 수준이 높은 거제시에는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주요 조선사가 위치해 있다"면서 "최근 이들 조선사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역경제가 얼어붙었고, 이에 따른 줄폐업 등으로 공실률이 늘고, 주택거래까지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거제시에선 '탈(脫)거제'가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불과 3년 만에 인구 4만명이 줄었다. 2015년 12월 말 기준 375곳에 이르렀던 조선 관련 지역 협력사는 현재 260곳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70%가 조선업종에 종사하는 것을 감안하면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는 인근인 통영시도 마찬가지다. 이곳엔 한때 6개의 중형 조선소에 1만8000여명이 종사했으나, 현재는 '아사' 직전인 성동조선해양만 남았다. 지난 6월 기준 이 지역 내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1579가구까지 상승했고, 매도 물량이 쌓이면서 거래가는 급락했다.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조선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관련 산업이 줄줄이 무너졌다"며 "월세를 낮춰도 입주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는 울산지역도 불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회사가 35년 만에 해양플랜트 사업을 가동 중단키로 하면서 약 4000명이 실직 상태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해양플랜트는 유가가 크게 올라야 유전개발사업(E&P) 수요가 커져 발주 또한 늘지만, 현재 수준으로는 투자비용이 저렴한 육상플랜트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양플랜트 종사자의 경우 2016년 5만여명에 달했던 게 현재는 1만50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며 "현대중공업 외에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까지 (해양플랜트) 신규 수주를 따내지 못하고 있어 인원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업 '핀셋' 지원 이뤄져야"
'빅3' 조선소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선박 수주에서는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129만CGT(표준화물선 환산t수)인데, 이 가운데 국내 조선사들이 54만CGT(42%)를 싹쓸이했다. 친환경 선박인 LNG선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이 통했다.
선박 가격은 오름세다. 지난 2월 기준 1조8000억 달러였던 LNG선 한 척의 가격은 1조8100억 달러로 0.6% 올랐다.
향후 전망도 밝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등에서 이뤄진 조선소 구조조정에 따라 글로벌 시장의 선박 건조 능력은 내년 초까지 감소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다만 LNG와 컨테이너선 등의 발주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선가 역시 내년 초까지 점차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LNG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수요가 모든 선종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은 기본 설계능력 한계로 선박 건조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2020년부터 적용되는 저유황 연료 규제 등으로 늘어나는 선박 교체 수요는 우리 조선소들의 선가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해운산업을 재건해 조선산업을 발전시키는 '해운재건 5개년' 정책을 펼치고 있다. 5조5000억원을 투입해 2020년까지 벌크선 140척, 컨테이너선 60척 등 200척 이상의 국내 신조 발주를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세계 14위인 국적선사 '현대상선'을 10위권으로 끌어올리고, 조선사들의 수주에 숨통을 터준다는 전략이다.
물론 이 같은 업황 개선과 정부 지원에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 우리 조선소들의 매출 비중을 보면 내수 비중은 고작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해외에서 나온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200척 발주'는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조선업은 한편으론 방위산업으로서 공적 성격이 짙은 만큼, 조선강국인 우리나라가 기술격차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연구개발(R&D)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꾸준한 수주를 이어갈 수 있고, 지역경제 회복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