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라화의 급락세가 진정됐지만 인도 루피화를 포함한 신흥국 통화가 달러 대비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지는 등 파장이 적지 않다. 터키발 충격이 어디까지 닿을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터키 리라화는 사상 최저치에서 반등했다. 14일(현지시간) 리라·달러 환율은 하루 전 7.2리라에서 6.3리라까지 내렸다. 리라 가치가 오른 것이다. 15일 아시아 시장에서 리라·달러 환율은 6.2리라까지 더 떨어졌다. 터키 중앙은행이 통화 긴축 가능성을 시사하고,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16일에 콘퍼런스콜을 열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면서 시장의 공포가 한풀 꺾였다.
아르헨티나 페소는 13일 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30페소를 돌파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40%에서 45%로 5% 포인트나 올리는 긴급 처방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0페소 근처에 머물러 있다.
인도 루피화 가치도 연일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루피·달러 환율은 14일 처음으로 70루피를 돌파했다. 다만 인도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아직까지 루피 약세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 인도 현지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에 따르면 수바시 가르그 인도 경제장관은 14일 성명을 내고 "루피 하락은 전적으로 외부 요인에 기인했으며, 인도는 이 정도의 루피 하락을 견뎌낼 충분할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루피·달러 환율이 조만간 80루피를 찍을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국 언론 익스프레스는 터키에 이어 인도 통화가 급락하자 ‘취약 5개국(Fragile 5)'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취약 5개국'이란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20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통화긴축에 취약한 신흥 5개국(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을 일컬은 말이다. 인플레이션과 무역 불균형,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 지출 증가는 인도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다. 익스프레스는 인도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가장 심한 신흥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의 통화 긴축으로 유동성이 줄어들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루피 하락으로 원유 수입비용이 늘어나고 물가상승이 가속되면 인도의 재정운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위기가 일부 취약국에 그치지 않고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된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뜩이나 최근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신흥국들의 자본 이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리라화 폭락과 같은 예측하지 못한 충격이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를 급격히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흥국들이 지난 수년 동안 저금리 환경을 이용하여 외화 표시 부채를 불린 것도 신흥시장의 잠재적 리스크를 키웠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외화 표시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상환 부담이 커지는 탓이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신흥국에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규모는 3조2297억 달러(약 3640조원)로 추산된다.
브룩스맥도날드의 에드워드 박 이사는 WSJ에 "많은 나라가 저럼한 달러 빚을 통해 재정 적자를 메워왔다“면서 ”얼마나 많은 나라가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으로선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주요 18개 신흥국을 대상으로 경상수지 적자, 대외 부채, 인플레이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가장 취약한 국가를 선정했는데 터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남아공,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가 순서대로 이름을 올렸다. 금융위기의 전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들인 셈이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경우 대만과 함께 가장 전염 위험이 적은 나라로 꼽았다.
다만 신흥국들이 외환위기에 맞설 맷집을 키워왔기 때문에 터키 쇼크의 파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이버거베르만의 롭 드리코니겐 공동대표는 WSJ에 “신흥국 대부분이 외환보유고를 늘렸고 국제수지도 개선됐다”면서 “본격적인 위기 전염에 대한 우려는 아직 제한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