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58년생 개띠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가 가장 많이 태어났다는 1958년에 77만여명과 함께 세상의 빛을 보셨죠. 2018년 이들이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들을 두고 가장 걱정한 건 ‘퇴직’입니다. 77만여명이 회사 혹은 가게, 그들의 직장에서 쏟아져 나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걱정이었던 거죠.
지난해 치러진 제28회 공인중개사 1차 시험에는 전국에서 18만명이 넘게 뛰어들었습니다. 이 중에서 합격자는 3만명, 합격률은 25%. 첫날 학원에 다녀온 아버지는 ‘학원에 가보니 젊은 애들이 너무 많다’며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최근 공인중개사 시험은 중·장년층 외에 20~30대 젊은층까지 뛰어들어 매년 도전자의 숫자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총 시험 응시자는 32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죠. 초기 자본 외에 임대료 등 사무실 유지 비용만 감당하면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개업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어붙는 부동산 경기에 주택 거래량은 점점 떨어지고, 한 달에 한 건도 거래하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는 중개업자들의 볼멘 목소리는 늘어갑니다. 지난해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인 8~10월 동안 새롭게 개업한 중개사는 4253명입니다. 같은 기간 폐업한 중개사도 3292명이죠.
이에 관련 기관에서도 공인중개사 숫자를 조절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도 공인중개사 배출 숫자를 조절하기 위해 시험의 난이도를 높여야 한다고 건의한 적도 있고요.
그러나 당장 뾰족한 대책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업계에서 지난달 통과된 부동산산업서비스 진흥법이 자리잡아 기존의 구멍가게식 중개업소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갖춘 공인중개사들이 탄생하길 기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파이’는 줄었지만 '입'은 늘어나고 있는 건 공인중개사뿐만 아닙니다. 노년에 소득 원천을 찾아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유 자금이 있는 노년층은 대학가 근처 다가구주택을 매입해 월세로 용돈을 충당하려 하지만 청년들의 주거난과 맞물리면서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물고 물리는 이 고리를 끊을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제가 아버지의 공인중개사 시험 도전기를 글로 쓰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 아버지는 싫다고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동네방네 소문 다 내놨는데 떨어지면 부끄럽다는 게 이유였죠. 이렇게 전국에 알려져버렸으니 저희 아버지의 공부 시간은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저는 88년생 호돌이띠입니다. 아버지가 서른살이 되는 해에 품에 안으셨죠. 88년생이 모든 58년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