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환율전쟁으로 번지나…"亞 등 신흥시장 타격 우려"

2018-07-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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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연일 中·EU '환율조작' 비판…므누신 "환율전쟁 안 일어나" 진화 역부족

달러 강세에 위안화 약세 압력까지…亞 등 신흥시장 타격 우려 통화정책 '딜레마'

[사진=AP·연합뉴스]


글로벌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번질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환율전쟁 발발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시장에서는 우려가 현실이 돼 간다며 경계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므누신 장관은 이날 무역전쟁 발발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방문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견 중 '투자자들이 환율전쟁을 우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No)"라고 잘라 말했다.
므누신 장관은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지만, 이번 회의 기간 내내 환율전쟁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전날 회견에서도 미국이 강(强)달러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므누신 장관의 진화 덕분인지, 이번 G20 회의에서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 사이에서는 환율전쟁 우려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디아 칼비노 스페인 경제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 문제(환율전쟁)를 논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므누신 장관의 발언은 뒤끝이 개운하지 않다. 그가 최근 환율전쟁 우려를 고조시킨 장본인이어서다. 므누신 장관은 지난 20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한 회견 중에 미국이 최근 두드러진 중국 위안화 약세 행보를 감시하고 있으며, 위안화 환율 조작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가 오는 10월 의회에 낼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게 된 이유다.

므누신 장관은 올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약한 달러는 무역, 기회와 관련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다"고 말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미국이 수십년간 지켜온 강달러 기조를 버리고 달러 약세를 유도해 환율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전면적인 환율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연일 중국과 유럽연합(EU)의 환율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회견에서 "EU는 돈값을 낮추고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으며 중국 통화는 돌멩이처럼 추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상 정책이 달러 값을 띄워 올리기 때문에 달갑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에도 트위터에 "미국은 불법적인 환율조작과 나쁜 무역협정 때문에 잃은 걸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역전쟁과 동시에 환율전쟁을 벌일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무역전쟁에서 흔히 쓰는 보복 조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환율 통제다.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수입품 가격은 높이고, 수출품 가격은 낮추는 식이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를 약세로 몰아가는 게 환율전쟁이다.

환율전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든다(Beggar Thy Neighbor)'는 점에서 무역전쟁과 닮았다. 보복 악순환에 결국 승자 없는 게임이 된다는 점도 그렇다. 환율전쟁은 무역전쟁을 더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환율전쟁은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통화 가치를 낮춰 수입품 가격을 높이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부작용을 낼 수 있다. 통화 약세는 자본 이탈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므누신 장관이 아무리 환율전쟁 가능성을 부인해도 시장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월가에서 손꼽히는 외환투자전략가인 옌스 노르드빅 엑스탄테데이터 설립자는 블룸버그에 "글로벌 무역·통화 공조 체제가 흐트러졌다는 게 진짜 리스크(위험)"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 초점이) 무역전쟁에서 환율전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샤하브 잘리누스 크레디트스위스 외환투자전략가는 다른 나라들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환율전쟁의 정의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슷한 발언이 이어지면 시장에서 달러 강세 전망을 근거로 한 달러 매수 포지션을 축소해 달러가 약세로 접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위안화 약세 흐름이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 통화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원화나 대만·싱가포르 달러, 말레이시아 링깃, 인도네시아 루피아, 심지어 호주·뉴질랜드 달러와 일본 엔화에도 위안화 약세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이들 통화는 그동안 달러 강세 때문에 약세 압력을 받아왔다. 주요 무역상대국인 중국의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면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약세 압력을 덜기 위한 통화긴축에 나설지, 위안화와 약세 경쟁을 할지, 중앙은행의 고민이 커지는 셈이다.

중국외환교역센터(CFETS)에 따르면 주요 통화 대비 위안화 값을 나타내는 위안화환율지수는 지난 6월까지 1년간 5% 넘게 올랐지만, 6월 이후에는 3% 하락했다. 위안화환율지수에서 아시아지역 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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