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드루킹' 김모씨 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노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 아파트 현관 쪽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노 의원은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10월유신에 반대, 반독재 투쟁에 참여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후 광주민주화운동에 충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몸담았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인천과 부천 지역 노동조합을 규합해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출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당시 인민노련 결성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노 의원은 2004년 제도정치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17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당시 노 의원의 당선으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국회 진입이 실패했다.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 내 NL-PD 갈등으로 민노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창당한다. 진보신당 초대 당 대표를 역임하며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한명숙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한 채 완주했다.
노 의원은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 19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당선됐다.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당시 탈당하고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노 의원은 2013년 삼성 X파일 사건에 연루된 검사의 이름을 공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병에서 열린 재보궐선거에 아내인 김지선씨가 나섰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에게 패배했다.
노 의원은 20대 총선에선 노동자가 많은 경남 창원성산에 출마해 51.5%의 지지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