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금융위원회 주재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세미나가 개최됐다. 동 세미나에서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일반 주주와 지배주주 간 이해상충’을 꼽았다. 기업의 의사 결정이 일반 주주 권익을 훼손할지라도 지배(최대)주주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중 약 77%를 설명하는 코스피200 상장사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 평균치는 41%로 대부분 절반을 넘지 못한다. 1주 1의결권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대부분 절반 이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를 위한 의사 결정이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대부분 국내 기업은 최대주주 측 인사만으로 이사회가 구성되어 최대주주를 위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점에서 소수 주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대부분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투자를 꺼리게 되고,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수 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이사가 이사회에 1명이라도 입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사는 이사회에 상정된 의안에 대하여 찬부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고 이것이 이사회 의사록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정책 결정을 위한 조언과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기업 경영에 긴밀히 관여할 수 있으므로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일반 주주 측 이사는 다른 이사들이 최대주주 측 인사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큰 영향력을 지닌다. SM엔터테인먼트 사례에서도 이사는 아니나 주주 제안 측 감사가 선임된 이후 라이크기획과 계약 종료 및 지배구조 개선 방안 발표까지 이어진 좋은 선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소수 주주가 추천하는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제도가 바로 집중투표제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각 주주의 의결권 수를 ‘보유 주식 수 x 이사의 수’로 하고 이를 후보 한 명에게 집중하여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 적용 시 최대주주 측보다 적은 주식 수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1명 이상 이사를 소수 주주 측이 선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집중투표제는 IMF 이후 경영감시 장치 강화와 소수 주주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 목적으로 상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다. 집중투표제 도입 방식에는 ①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방식 ②집중투표제를 원칙으로 하지 않되 정관에 의해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Opt-in 방식 ③정관에 언급이 없으면 집중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이고, 이를 배제하기 위해 정관에 규정을 두어야 하는 Opt-out 방식 등 세 가지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도입 당시 미국법과 일본법을 참고하여 세 번째인 Opt-out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에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국내 175개 기업 가운데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은 약 5%에 불과하다. 그리고 채택 기업은 상당수가 공기업이며 민간기업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집중투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집중투표제를 아예 의무화하자는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2016년에는 김종인 의원안·채이배 의원안·노회찬 의원안으로, 2020년에는 박용진 의원안으로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대한 상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재계 반대에 부딪혀 발의된 개정안에 대한 입법은 모두 무산되었고 반대 여론을 감안할 때 향후에도 상법 개정을 통한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법 개정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집중투표제 적용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상법 제542조의 7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가 집중투표가 배제된 정관을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도록 변경하려는 경우 3%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분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 규정을 활용하면 필요시 소수 주주들도 다른 소수 주주들에게 협조를 구하여 정관 개정을 통해 지배구조 이슈가 있는 기업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이사 1~2명을 진입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는 상법 시행령 제12조에 따라 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상장회사는 2021년 말 기준 총 252개로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회사 중 약 10%에 불과하다. 거버넌스 문제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규모가 큰 회사에서만 3% 룰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의사 결정으로 본 시행령을 개정하여 자산총액 기준을 2조원이 아닌 1000억원으로 낮춘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2021년 말 기준 대상 기업은 1639개로,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회사 중 약 67%에 달한다. 현행 대비 추가로 약 1400개 기업에서 집중투표를 통해 소수 주주 측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며, 소수 주주들의 주주행동 움직임이 중소 규모 상장사에서 비교적 활발하다는 점에서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물적분할 시 일반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고, 올해에는 기업 인수합병 시 의무공개매수 도입을 추진하는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에 관해서는 더욱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앞에서 제안한 대로 법 개정 없이도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주주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 방안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시점에 범사회적 논의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