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자연재난’에 추가하는 법안의 국회 처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이 대체로 긍정적이고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바꿔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에 폭염경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이날도 대부분 지역에서 낮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4~7도 높은 35도 이상을 기록했다. 이날 서울의 최저 기온은 현대적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1년 만에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전날인 22일에는 서울 낮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치솟으며 7월 날씨로는 역대 세 번째, 7∼8월을 합치면 역대 다섯 번째로 더웠다. 이 때문에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축산농가 피해도 증가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3일 오전 기준으로 가축 125만여 마리가 폐사했다. 전국 곳곳에서 정전 사태도 속출했다. 22일 저녁 인천 작전동 아파트 단지에 있는 변압기가 고장나 840여 가구가 정전됐다. 600여 가구에는 2시간여 만에 전기 공급이 재개됐지만, 나머지 가구는 복구되지 않아 밤새 무더위에 시달렸다.
폭염 피해가 확산되면서 정부가 폭염을 재난의 하나인 자연재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폭염을 자연재난에 추가해 이로 인한 피해를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현행법을 보면 재난은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나뉜다. 자연재난은 태풍·홍수·호우·강풍·대설·낙뢰·가뭄·지진·황사·조류 대발생·화산활동 등과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를 말한다. 많은 자연재해가 포함됐지만 지금까지 폭염은 빠져 있었다.
국회에서는 일찌감치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2016년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재난안전법 개정안은 자연재난 범위에 폭염과 혹한을 추가하도록 했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과 가축·수산물 폐사, 농산물 생산량 감소, 세균 번식으로 인한 식중독 등에 효과적으로 예방·대응하기 위해서다.
폭염이 자연재난으로 정해지면 온열질환 등으로 숨지거나 다치면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 폐사한 가축에 대해 보상도 해준다. 특별재난지역에는 응급대책과 재난구호를 비롯해 복구에 필요한 행정·재정·금융·의료 지원도 이뤄진다.
같은 해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과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도 동일한 내용의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해 다른 자연재난처럼 ‘재난구호 및 재난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보상이나 구호 등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했다. 정병국 의원은 자연재해에 폭염과 혹한을 추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효과적인 예방·대응 방안을 수립하도록 했다.
윤영석 한국당 의원도 지난해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재해에 폭염과 혹한 등을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내놓았다.
이들 법안은 지금껏 국회의 무관심과 정부의 반대에 밀려 상임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지면서 이르면 연내에 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매년 여름마다 폭염 피해가 계속되면서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1년 전만 해도 난색을 표하던 정부도 입장을 바꿔서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기로 입장을 정했다”면서 “국회에서 관련 법을 심의할 때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데 찬성 의견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