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유해는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한 후 김 전 총리가 졸업한 공주고등학교와 부여초등학교 교정, 그리고 고향 부여 시내를 거쳐 부여군 외산면 가족묘원에 도착했다.
납골당에는 2015년 2월 세상을 떠난 김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씨가 잠들어 있다.
부인과 천생배필로 불릴 만큼 다정했던 김 전 총리는 생전에 “고향의 가족묘원에 먼저 간 아내와 함께 묻히겠다”며 국립묘지 대신 부인이 묻힌 충남 부여의 가족묘원을 택했다.
이어 “국리민복(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 국태민안(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함)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전력 했다”면서 “쓸데없이 말이 많은 물음에 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고 자신의 삶을 자평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내조에 덕을 베푼 반려자와 이곳에 함께 누웠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부부가 함께 잠든 봉안당을 커다란 둥근 돌문으로 봉안하고, 분향소에서 평토제를 지내는 것으로 이날 안장식은 모두 끝났다.
앞서 영결식은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장례위원장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조사를 통해 “김종필 총재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를 만끽하는 오늘을 있게 한 분”이라며 “산업화의 기반 위에 민주화가 싹 트이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이어 “목숨을 건 혁명과 매국노의 누명을 쓴 한일협상, 두 차례의 외유와 신군부 탄압과 망명의 정치 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고초를 꿋꿋이 이겨내시고 주위를 다독이며 웃으시던 모습에 사랑과 존경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아들인 나카소네 히로부미 참의원이 대독한 조사를 통해 “선생께서는 초대 한일 국회의원연맹 대표를 역임하고 국무총리로서 한일 공동선언을 추진하는 등 한일 관계 강화를 위해 시종일관 힘썼다”고 말했다.
그는 “전후 혼란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조국이 부흥하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중책을 맡으시며 한시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실로 대한민국과 행보를 같이 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동북아 정세는 큰 전환점에 있는 가운데 일본과 한국은 많은 어려움 극복하며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 옛 친구를 떠나보내 참으로 슬프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영결식이 끝난 뒤 김 전 총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는 고인이 살았던 청구동 자택에서 노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