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상은 이날 합의문에서 새로운 북·미관계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상호간 신뢰를 키우는 것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 모두 발언을 통해 “의심 없이 (양국이) 좋은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며 "우리한테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랬던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모두 관계 정상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북한은 수십년간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추구하면서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정상 간의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면서 핵 위기를 넘긴 후, 미국은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체결해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를 지원하면서 완공 시 핵시설을 해체하기로 하고 북·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방북해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면서 이 합의는 깨졌다.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찾은 이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11월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2005년 9월에는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에 합의, 북한이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복귀하는 한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로 했지만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유야무야됐다.
2011년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북핵문제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면서 악화되다 지난해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올해 들어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평창동계올림픽 특사교환을 통해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초 이를 받아들이면서 회담이 성사됐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 차례 취소를 발표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결국 북한은 수십년 동안 추구해 왔던 미국 정상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관계 정상화의 길을 열게 됐다.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연락사무소 개설부터 시작해 대사관을 개설하는 수교까지 추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이러한 조치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과거 적성국가였지만 동맹관계로 발전한 베트남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전쟁에 이기면서 1975년 공산화된 이후, 1986년 경제개혁정책인 ‘도이모이’를 추진하면서 개방을 시도하고 시장 지향 경제를 도입하기 시작해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베트남은 이제 미국과 공동 군사훈련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북한과 미국 양측이 문화 교류부터 나설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에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참여하고 있는 것도 앞으로의 문화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1971년 미국 탁구 선수단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관계 정상화의 길을 턴 사례와 같이, 정상화 초기 단계로 스포츠·문화 외교가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최근 미 정부 인사들이 북한의 체조 선수단과 관현악단을 미국에 초청하는 문제를 포함한 문화교류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양국 문화 교류를 위해 체조선수들과 음악가들의 협력을 논의해 왔다는 것이다.
양국의 완전한 국교정상화는 북한 비핵화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국교정상화와 관련해 "모든 것이 완료됐을 때 하길 희망한다"고 했었다.
향후 북·미 간 합의에 따라 '냉전의 섬'이었던 한반도에 '데탕트'의 물결이 몰려오면 '한·미·일 대(對) 북·중·러'라는 동북아의 전통적 대립구도도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