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아이들이 할머니의 품에서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저는 임시정부와 그 어르신들의 크고 작은 옛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다들 책에서 배우던 걸 직접 할머니 말씀으로 들을 수 있었으니, 커다란 행운이었지요. 할머니는 저를 품에 안고 34년을 보듬어 주셨지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한없이 아늑한 할머니 냄새를 느낄 수 있어요.
할머니, 오늘은 임정 생일이에요.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그날이에요. 그래서 4월이면 넉넉하고 따뜻하던 할머니 품이 더욱 그립고, 임정과 독립운동 이야기들이 어제 들은 양 새록새록 떠올라요. 스무 살 때 증조부님이 계신 상해까지 홀로 찾아 나선 일이며, 독립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던 그 아슬아슬한 고비들, 그리고 안살림을 맡으며 임정과 함께한 만리장정…. 그 숱한 이야기 속에 할아버지만은 나오지 않았지요. 왜 그런지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어요.
네 해 전 재북 애국지사 후손 성묘단의 일원으로 북쪽에 계신 할아버지 묘소에 분단 이후 첫 성묘를 갈 수 있었어요. 평양으로 향하는 제 호주머니에는 할머니 묘소에서 떠온 한줌 흙이 들어 있었어요. 온 가족이 함께 재북 인사 묘역에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께 절을 올린 뒤, 할머니 영정을 할아버지 사진이 담긴 비석 옆에 나란히 세우고 흙을 뿌렸어요. 남과 북의 흙이 합쳐지고 두 분의 한 맺힌 세월이 만나는 순간이었지요. 우리 모두는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어요.
열한 살에 혼인해서 소꿉동무로 연인으로 동지로 40년을 함께 하셨던 할아버지와 분단으로 헤어지고, 홀로 지내신 40년 세월이 어떠했을지 저는 할머니 곁에 있던 34년 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했어요. 그 긴 세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얼마나 그립고 애가 탔을지, 얼마나 많은 날을 문풍지 스치는 바람에도 가슴을 쓸어내렸을지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평양을 다녀온 후로 내내 제 마음 한 켠을 떠나지 않는 건 할머니의 낡은 일기장이에요. “아이가 태어나 첫 울음을 울 때 그 아이의 일생을 누가 알겠는가.”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귀한 집 딸로 태어나 부귀영화는커녕 독립운동자금 품어 안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기를 몇 번이었던가요. 가끔씩 제가 그 일기장을 꺼내 보곤 했다는 걸 할머니는 모르셨지요.
어느 봄날 할머니가 오래도록 써온 일기장을 태우시는 걸 본 제가 깜짝 놀라 말리던 걸 기억하실 거예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이런 것을 남긴들 뭘 하겠느냐. 다 부질없는 일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굳이 다 태워버리셨죠. 연기가 되어 날아가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저는 그저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어요. 고작 열다섯 살 어린아이였던 제가 할머니의 신산스런 마음 한 자락이라도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어요.
할머니, 오늘 임정 생일을 맞아 할머니께서 남긴 책 <장강일기>를 펼쳐 들어요. 다시금 읽어도 할머니 품에 안겨 처음 만났던 생동하는 독립운동 이야기들이 장강의 도도한 물결이 되어 흐르고 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그치지 않는 젖줄로 흐를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이 되기 전에 꼭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을 한자리에 모시고 싶어요.
그날까지 평안하세요.
끝없는 그리움과 존경을 담아 손녀딸 선현이 보냅니다.
2010년 4월 13일(이 글은 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펴낸 <백년편지>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