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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섬 제주와 일본 섬 오키나와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도 비슷하고, 있는 힘껏 휘몰아치는 바닷바람도 닮았습니다. 해마다 좋은 때에 '붉은 꽃'이 피어나는 것도 비슷하죠. 제주도에서는 '동백꽃'이, 오키나와에서는 '히비스커스'가 각각 섬을 붉게 물들입니다. 격변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냈다는 점에서도 두 섬은 닮았습니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었고 비슷한 시기 제주도는 '4.3'이라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제주 4.3은 지난 1947년부터 50년대 초반까지 제주 일대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말합니다. 4.3이라는 날짜는 수년간 이어진 비극 속에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왔던 1948년 4월 3일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제주도민 절반이 목숨을 잃고 섬의 3분의 2가 피로 물들었다고 해서 당시 미군정은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로 규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을 즈음하고 있는 탓에 제주 4.3은 종종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덕분에 제주 4.3에는 항쟁, 학살, 투쟁, 사변, 사건 등 많은 꼬리표가 따라 붙습니다. 70주년을 맞는 올해 제대로 된 이름을 찾자는, 이른바 '정명찾기' 운동이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와 제주 4.3 희생자유족회,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제주 4.3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군정이 해방 이후 남측의 실질적 통치기구였던 만큼, 민간인 학살의 상징인 제주 4.3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의 추가적인 조사도 필요합니다. 지난 2003년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하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념 논쟁에 휩싸이면서 추가적인 진상 조사와 피해자 보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념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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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당시 11세였던 소녀는 이제 81세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홍춘호 할머니는 동백꽃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녀시절의 슬픈 기억을 말할 수 있어서 이제 살 것 같다"고 말합니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수십년간 차마 4.3을 입에 담지 못했던 제주도민의 슬픔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주국제공항 한쪽에는 4.3 피해자들의 유해 발굴 작업이 아직도 진행중인 탓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동백꽃이 피는 계절에 유난히 말수가 적어진다고 합니다. 아마도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가 바로 동백꽃이 피는 시절에 벌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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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제주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이라고 합니다. 동백꽃은 꽃잎이 하나씩 흩어지는 다른 꽃과 달리 꽃송이가 한 번에 '툭' 하고 떨어지는데, 그 모습이 사람의 목숨이 떨어지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랍니다. 동백꽃과 히비스커스는 앞으로도 제주와 오키나와에서 각각 피고 또 질 것입니다. 언젠가 여행길에서 우연히 붉은 꽃과 마주친다면 공권력 앞에, 역사 앞에 스러져간 수백만 민중의 얼굴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영화 <코코>에 나오듯 어딘가에 죽은 영혼들의 세상이 있다면, 서러운 죽음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억해주는 게 남겨진 우리들의 몫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