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 성의 어르신은 그래도 힘이 셌다. 그는 160㎝ 정도의 키와 깡마른 몸매에 허리가 조금 굽어진 할아버지(76)다. 우 할아버지는 컴퓨터 포장용으로 쓰이는 납작하게 펼쳐진 큰 종이상자 몇 장을 전동차 위로 가볍게 들어 올려 차곡차곡 쌓았다.
지난 4월 20일 오전 8시경. 수원시 영통구 상가 어느 건물 지하주차장 입구에 있는 창고에서 할아버지는 느린 몸짓이지만 연신 종이상자를 가져다 날랐다. 마치 개미가 자기 몸짓만 한 과자 부스러기를 입에 물고 부지런히 옮기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한 차 가득 싫으면 200㎏ 정도 돼요. ㎏당 40원이니까 8000원 이네요. 얼마 전까지 130원 했었는데···. 중국에서 폐지 수입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사연이 많아요. 폐지 주운 지 20년 됐네요.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밥 먹고 살면 됐지요 뭐.”
빌라에 사는 할아버지가 요즘 폐지수집으로 버는 수입은 월 50만원정도. 노령연금 20만원과 국민연금 13만원을 받아 세금(전기요금·가스비·텔레비전 수신료 등 10만원정도) 내고 나면 "그저 밥은 먹고 산다"고 했다.
세 살 아래 아내와 함께 살고 있고, 출가한 아들과 딸도 잘살고 있다고 했다.
"큰 손주가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전동차에 올라탄 할아버지는 이렇게 자랑하듯 말하고는 시동을 걸고 유유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폐지 수집을 통해 생활하는 노인들의 생활이 더 팍팍해지고 있다. 최근 중국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해 지난해 말 ㎏당 130원 안팎이었던 폐지 가격이 최근 30~40원 선으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2017년 말 현재 수원시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630여명에 달한다. 수원시가 폐지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폐지수집 노인들의 생활실태 파악에 나섰다.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수원시는 지난달 13일부터 20일까지 관내 만 65세 이상 폐지수집 어르신의 생활실태를 조사했다.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폐지수집 어르신을 방문해 세대 구성, 생활 수준(기초생활수급·기초연금수급 여부 등), 지출 유형, 폐지수집 사유 등을 조사하고, 긴급 지원대상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폐지수집 65세 이상 노인 630여명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중위소득 50% 이하 등 저소득층이 절반 가까이 된다. 40%가량은 1인 가구다.
수원시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을 긴급지원하고, 사례 관리 대상자로 지정해 민간복지자원과 연계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근로 능력이 있는 어르신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폐지수집 노인들에 관한 지원 조례’를 제정해 지원 근거를 마련한 수원시는 무료급식, 노인 일자리 제공, 소규모 무료 집수리 등을 지원하고 있다. 미세먼지 방진 마스크, 얼음 조끼, 야광 밴드, 방한복, 방한화 등도 지원한다.
홀몸 어르신은 독거노인생활관리사가 주 3회 이상 안전을 확인하고, 복지서비스를 연계해준다. 가정 내 가스·화재·활동을 감지하는 센서를 홀몸 어르신 가정에 설치해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긴급출동을 하는 ‘응급안전 알림서비스’도 운영한다.
신화균 시 복지여성국장은 "대부분 빈곤층인 폐지수집 노인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며 "이번 실태조사로 최근 폐지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긴급 지원하고, 나아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원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