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가요?” 출근길에 네 살 배기 아들이 묻는다.
“회사 가지” 했더니 “왜 회사 가요?” “일하러 가지.” “일은 왜 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3월 들어 실업률이 17년 만에 최악이고, 청년 실업률은 11%대를 넘어섰다는 기사를 쓰면서도 왜 취업을 해야 하고, 노동을 해야 하는지 질문해 본 적 없다.
“노동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 즉 인간이 자연과의 질료변환을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 매개하고, 규제하고, 통제하는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노동(勞動)을 이 같이 정의했다.
동물은 주어진 자연 그대로를 이용해 살아가지만,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필요에 적응시킨다는 것이다. 동물계로부터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는 잣대 중 하나가 노동이란 의미다.
여기서 '목적'에 방점이 찍혔다.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생계, 임금, 자아실현···. 임금은 오를수록 좋고, 자아실현은 시간이 많을수록 좋다.
그러려면 최저임금이 인상돼야 하고, 근로시간은 줄여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일자리가 줄어 노동 자체를 못하게 된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방향엔 공감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야 하는지 논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빨리만 가다 보니 정작 고용이 줄어드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산을 오를 때 정상만 보고 가면 놓치는 게 많다. 꽃, 나무, 공기, 산 생김새 등등의 어느 것도 가슴에 남는 게 없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근로시간 52시간 단축에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이유도 놓치는 게 커서다. 일자리를 잃으면 임금도, 근로시간도 헛것이 된다.
왜 임금을 올려야 하고, 근로시간을 줄여야 하는지 묻기 전에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물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우리 아들이 묻는 목적은 초코우유를 사 달라는 거다. 아빠를 변화시켰으니 나름 노동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