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대림동 햄스터 120마리 유기 사건'의 전말

2018-04-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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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소재 건물에 120마리 햄스터 방치…온라인 공론화 이후 네티즌 자발적 구조 나서

강모씨 "방치한 적 없어…햄스터 무료 대여 사업 예정" 전문가들 "사실상 영리 목적, 위법 소지"

[사진=대림동 유기햄스터 자원봉사자 제공]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한 건물. 이곳에 햄스터 120마리가 방치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최근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집결해 구조에 나섰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대림동 햄스터 120마리 유기 사건'의 전말을 취재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모씨(49)는 지난해 12월말 양모씨(41)가 운영하던 해당 건물 6층 스튜디오를 인수하겠다며 찾아왔다. 강씨는 2월부터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할 계획이라며, 인테리어 작업 등의 이유로 열쇠를 먼저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반년 동안 임차인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르던 양씨는 흔쾌히 응했다.
그러나 강씨는 약속과 달리 계약서 작성을 3월로, 4월로 번번이 미뤘다. 심지어 그동안 전기 요금은 물론 관리비 한 번 내지 않아 단전되기 직전의 상황이 됐다. 참다 못한 양씨가 4월 2일까지 밀린 월세와 전기 요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번에도 강씨는 응하지 않았다.

결국 양씨는 지난 3일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강씨가 새로운 잠금장치를 설치했기에 열쇠공까지 불러 강제로 문을 열어야 했다. 스튜디오에 발을 디딘 양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그곳은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좌우로 스와이핑하면 전후 사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악취가 진동하는 스튜디오 곳곳에 잡동사니가 널부러진 가운데, 천장에는 헌 옷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양씨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플라스틱 서랍장 속 햄스터들이었다. 좁은 곳에서 사육되고 있는 햄스터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몇 마리인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양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햄스터에 대해 잘 모르지만 딱 봐도 하루가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햄스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햄스터들이 사육되고 있던 플라스틱 서랍장. [사진=대림동 유기 햄스터 자원봉사자 제공]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간 사람은 인근에 거주하는 전모씨(24). 전씨는 9일 오후 아주경제와 만나 "햄스터를 키우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씨가 살펴본 현장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오물로 뒤엉킨 베딩 속에 방치된 햄스터는 120마리가 넘었다.

단독 생활을 즐기는 특성이 무시된 채, 좁은 사육장에 그야말로 우겨넣어진 상태. 서랍장 외에도 유리 테이블을 개조한 3㎡ 남짓한 사육장 안에 20~30마리가 갇혀 있었다.
 

햄스터들에게 사료 대신 준 것으로 추정되는 도넛들. [사진=백준무 기자]


이미 목숨을 잃은 햄스터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햄스터만 9마리로 파악됐다. 심지어 급수기가 설치되지 않은 사육장은 물론, 전용사료 대신 도넛만 놓여진 곳도 많았다.

전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를 공론화하면서 도움의 손길이 모이기 시작했다. 수십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 힘을 모아 햄스터들을 일일이 분리하고, 분양과 임시보호에 나섰다. 주말 사이에 햄스터 120마리 전체가 새로운 가족을 찾았다.

200만 원에 달하는 모금은 물론 각종 용품 또한 모여들었다. 전씨와 자원봉사자들은 구조된 햄스터 중 치료가 필요한 개체를 대상으로 비용과 물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식을 접한 이들이 현장에서 유기 햄스터들을 구조하고 있다. [사진=대림동 유기 햄스터 자원봉사자 제공]


강씨는 어떤 이유로 햄스터들을 이렇게 방치했을까. 그는 9일 오후 아주경제와 만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강씨는 "양씨와의 금전적인 문제로 스튜디오에 2~3일 동안 들어오는 게 불편했을 뿐 햄스터들을 방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강씨에 따르면 지난해 봄 강씨가 키우던 햄스터 7마리가 번식하면서 100여마리로 불어났다. 그는 인테리어 사업을 주업으로 삼으면서, "햄스터 무료 대여 사업을 겸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햄스터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대신 관련 용품 등의 판매로 약간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강씨의 생각이다. 실제로 강씨에게 받은 명함에는 "애완동물 무료 대여 - 애완동물이 필요한 남녀노소 누구나 가능"이라는 문구가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동물을 대여할 경우에 대해서만 처벌한다. 그러나 강씨의 '무료 대여' 역시 사실상 영리 목적으로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김현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정책팀장은 "햄스터 사육이 수익을 올리기 위한 영업적 차원이기 때문에 영리와 무관하다고 볼 수가 없다"며 "동물보호법이 말하는 비영리적 목적은 교육이나 치유·공감을 매개하는 활동에 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씨는 9일 사기 혐의로 강씨를 영등포경찰서에 고소했다. 양씨는 "조만간 동물학대·퇴거불응 혐의로 강씨를 추가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강씨는 "양씨가 스튜디오에 들어온 뒤로 가족 사진이 있는 앨범 등이 없어졌다"며 양씨를 절도 혐의로 맞고소했다.
 

햄스터가 방치됐던 건물 6층 스튜디오 입구. [사진=백준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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