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강력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작업으로 지난해부터 주요 지방정부 인사를 속속 진행하면서 경제적으로 발전한 동부 연해 지역에도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친위세력)이 포진했다. 시 주석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했지만 대부분은 중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혁신'을 통한 발전을 이끌기 위한 전문가들이다. 특히 중국 '우주굴기(우뚝 섬)'를 이끄는 우주방 등 테크노크라트가 배치된 것이 눈길을 끈다.
◇ 처쥔 저장성 당서기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되고 소위 시자쥔이 요직을 장악했다. 특히 시 주석이 지난 2002~2007년 저장(浙江)성 서기로 재직할 당시 인연을 맺은 소위 '즈장신쥔(之江新軍)'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 끈끈한 인연의 시작점인 저장성의 1인자도 즈장신쥔이다.
처 서기는 1955년 안후이(安徽)성 차오후(巢湖) 출신의 법률 전문가다. 안후이성 허페이(合肥) 시 중국인민법원 부원장을 거쳐 공안국에서 활약하고 허페이 서기와 시장을 역임했다. 2005년 허베이(河北)성 정법위 서기에 임명됐으며 허베이성 부서기, 스자좡(石家莊)시 서기,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부서기, 저장성 부서기 겸 성장을 거쳐 지난해 4월 1인자로 올라섰다.
◇ 위안자쥔 저장성 성장
중국이 우주강국으로의 도약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의 우주굴기를 최전선에서 이끌어온 소위 '우주개발스타'도 전국 곳곳에 포진해 중국의 혁신형 국가로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을 '우주방'으로 지칭하기도 하는데 위안자쥔(袁家軍) 성장이 대표적인 우주방 인사다.
1962년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에서 출생한 그는 중국 항공항천부공간기술연구원 우주선 설계과를 졸업하고 공학박사를 취득한 우주 전문가다. 1970년 4월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둥팡훙(東方紅)-1호'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7살 위안자쥔의 꿈도 시작됐다. 위안 성장은 "7살 소년이었던 그 때 우주의 비밀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요동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99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의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프로젝트의 부지휘관을 맡아 성공으로 이끌면서 '우주 소장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3년에는 선저우 프로젝트 총지휘관에 올랐고 2012년 닝샤후이족(零夏回族)자치구를 시작으로 지방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4년 저장성으로 넘어와 부성장, 부서기, 정법위 부서기 등을 거쳐 지난해 9월 성장에 임명됐다.
◇ 러우친젠 장쑤성 당서기
장쑤(江蘇)성은 테크노크라트가 차지했다. 막강한 경제력과 시장을 바탕으로 중국 산업 혁신과 선진화 등을 이끌기 위한 인선으로 풀이된다.
1956년 12월 구이저우(貴州) 퉁쯔(桐梓)에서 태어난 러우친젠(婁勤儉) 서기는 컴퓨터 분야 전문가다. 화중공대 컴퓨터 엔지니어링 학사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고 1982년 중국 기계전자공업부(현 공업신식화부) 보조 엔지니어로 시작해 이 곳에서 단계적으로 승진하며 경력을 쌓았다. 1999년 신식산업부(현 공업신식화부) 부부장, 중국전자학회 부이사장 등을 거쳐 2008년 공업신식화부 부부장에 올랐다. 2010년 산시(陝西)성 부성장에 임명된 후 부서기 및 대리성장, 서기를 모두 역임했으며 지난해 10월 장쑤성으로 이동했다.
◇ 우정룽 장쑤성 성장
우정룽(吳政隆) 성장은 장쑤성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다. 현지 정황에도 밝고 동시에 '혁신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인재라는 평가다. 꾸준히 공직생활을 해온 인물로 행정 경력도 충분하다.
1964년 장쑤성 난징(南京)에서 태어났고 타이위안(太原)기계학원(현 중베이(中北)대) 기계엔지니어링 제조기술·설비업을 전공했다. 1987년 국가기계공업위원회 발전규획사(司·국) 간부로 임명됐고 이후 기계전자공업부에 몸을 담았다.
국유기업인 중국기계설비그룹공사 판공실 주임을 거쳐 1999년 12월 충칭(重慶)시 판공청 부주임으로 행정업무를 시작했다. 충칭시 완저우(萬州)구 서기 등을 역임하며 2014년 9월까지 서부지역 발전과 빈곤퇴치 등에 주력했고 2014년 9월 산시(山西)성 타이위안시 서기에 임명됐다.
장쑤성으로 돌아온 것은 2016년 9월이었다. 난징시 서기, 장쑤성 대리성장 등을 거쳐 2017년 7월 장쑤성 성장에 올랐다. 우 성장은 최근 양회를 통해 시진핑 사상의 실사구시 정신을 찬양하고 이와 함께 '호랑이와 파리' 모두를 잡는 반부패 활동과 사법체제 개혁 등을 강조하며 이러한 부분에서 노력할 뜻을 밝혔다.
◇ 류자이 산둥성 당서기
류자이(劉家義) 산둥(山東)성 서기는 광범위한 시진핑 계열 인사다. 정확하게는 은퇴연령을 맞았음에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시진핑의 남자', 왕치산(王岐山) 부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과거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쪽 인사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평생을 심계서(감사원 격)에서 감사업무에 종사하면서 현재는 왕 부주석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된다.
1956년 충칭(重慶)시 카이(開)현 출생한 류 서기는 쓰촨(四川)성 재정학교 재정학과를 졸업하고 현지 재정청 감찰처에서 근무했다. 1992년에는 중앙 심계서 상업·무역사(국)로 발령받아 수도 베이징으로 이동한다. 40세의 젊은 나이에 부심계장(차관급)에 올라 2007년까지 12년간 각 부 심계작업 종합, 특별감사, 국유기업 등 공기업 감사 등에 힘썼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심계장에 올랐고 지난해 3월에는 산둥성 서기로 임명됐다.
당시 명보(明報) 등 홍콩 언론은 파격적인 인사라고 평했다. 낮은 행정 단위에서 업무 경력을 쌓고 단계적으로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류 서기는 거의 30년을 심계서에만 몸 담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당국의 반부패 역량 강화에 따른 인사라는 해석을 내놨다. 류 서기가 앞서 류즈쥔(劉志軍) 전 철도부장 등 고위급 인사 단속 등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고 이에 당시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 서기였던 왕 부주석의 눈에 들은 것으로 추측했다.
◇ 궁정 산둥성 성장
시진핑 2기와 함께 시 주석을 보좌할 핵심인물로 꼽히는 이는 앞서 언급한 왕 부주석과 시 주석의 절친이자 경제책사로 알려진 류허(劉鶴) 부총리다. 궁정(龔正) 산둥성 성장은 류허 부총리의 매제로 광범위한 시자쥔으로 분류할 수 있다. 궁 성장은 또 해관총서(세관 격)에서 활약해온 경제·금융 전문가다.
1960년 3월 장쑤성 쑤저우(蘇州)에서 태어난 궁 성장은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를 졸업한 인재로 샤먼대에서 재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해관총서의 문을 두드렸고 이후 톈진 해관, 해관총서 정책법규사(국) 사장, 선전시 해관 관장 등을 거쳐 2003년 해관총서 부서장, 부서기에 올랐다.
그리고 2008년 12월 홍콩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혜성처럼' 등장해 저장성 부성장을 맡았다. 이후 항저우(杭州) 서기를 거쳐 2015년 산둥성 성장에 임명됐다. 당시 홍콩 명경 등은 순식간에 산둥성 2인자를 꿰찰 수 있었던 배경에 류허의 입김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 뤄후이닝 산시성 당서기
뤄후이닝(駱惠寧) 산시(山西)성 서기는 저장성 이우(義烏) 출신으로 역시 광범위한 '즈장신쉰'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시 주석이 강력한 권력 기반을 다지며 '1인체제' 구축에 성공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뤄 서기는 각급 당 조직에 '(시 주석) 핵심 옹립' 운동과 교육강화를 지시하고 '핵심 수호 및 실천주체 교육 판공실'을 세우며 충성을 다지기도 했다.
1954년 10월생으로 안후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중국과학기술대학원에서 경영 관련 석사, 중국 인민대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1995년 안후이성 판공실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선전부 부장 등을 거치며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 2003년 칭하이(靑海)시 부서기로 이동하고 2010년에 성장, 2013년 당서기를 단계적으로 거쳐 정치적 연륜과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산시성 서기에 임명됐다.
◇ 러우양성 산시성 성장
러우양성(樓陽生) 성장은 뤄 서기보다 시 주석에 한층 가까운 즈장신쥔이다. 시 주석이 저장성 서기로 근무할 당시 그 밑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은 저장성 토박이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지만 시자쥔의 색채가 훨씬 강하다는 평가다.
러우 성장은 1959년 10월 저장 푸장(浦江) 태어나 저장사범대 수학과, 저장대 경영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초창기 경력은 공청단과 연결된다. 1982년 대학 졸업 후 저장시 취저우(衢州) 룽유(龍游)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러우 성장은 1984년 룽유현 공청단 서기에 오르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저장성 공청단 부서기, 서기를 거쳐 2008년 저장성 정협 부주석 및 주석, 통전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14년 시 주석의 반부패 칼날에 산시성의 공직자들이 탄광업체와의 정격유착으로 우수수 낙마하면서 러우 성장이 산시성 부서기로 이동했다. 2016년 8월 대리 부성장, 당해 11월에 성장으로 승진했다.
◇ 류치 장시성 서기 겸 성장
이번 양회에서는 일부 지방정부 관련 인선도 결정됐다. 이에 따라 장시성의 1인자도 교체됐다. 루신서(鹿心社) 전 장시성 서기가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 서기로 이동하면서 장시(江西)성 성장이었던 류치(劉奇)가 서기로 승진한 것이다. 성장직도 유지돼 현재 장시성 성장 겸 서기다.
류 서기 역시 대표적인 '즈장신쥔'이다. 류 서기는 시 주석이 저장성에 머물 당시 국유기업인 저장쥐화(巨化)그룹 회장, 원저우(溫州) 시장, 저장성 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닝보(寧波)시 서기 등을 거쳤으며 이에 시 주석과 인연이 깊다는 평가다.
1976년 산둥성 출신으로 공학자이면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능력자다. 저장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저장취저우화학공업공사에서 1980년 근무를 시작했다. 저장성 석유화학공업청에서 일했고 1997년 쥐화그룹으로 넘어가 부회장, 회장, 당서기 등을 역임하며 경영능력을 키웠다. 2003년 원저우 부서기 겸 시장으로 공직생활에 복귀했으며 이후 지역 경제 발전에 매진했다. 2013년까지 저장성에서 근무했고 2016년 2월 장시성으로 이동해 대리성장, 성장을 거쳐 이번에 당서기에 올랐다.
◇ 장칭웨이 헤이룽장성 당서기
장칭웨이(張慶偉) 헤이룽장(黑龍江)성 서기는 중국을 대표하는 우주개발스타이자 테크노크라트다. 최근 중국 당정기관의 주력군으로 자리잡은 류링허우(60後·1960년대 출생자) 공직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61년 허베이성 러팅(樂亭)현 출신으로 시베이공업대 항공기설계과 학사 및 석사를 취득했고 경영학 박사이기도 하다.
1982년 중국 항공부 기술자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중국항천공업총공사, 중국항천과기그룹 당서기을 역임하며 로켓 개발과 제작에 참여한 우주 베테랑이다. 1990년 위성 발사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내 탄탄대로를 걸었고 뛰어난 능력에 따른 빠른 승진으로 '젊은 우주 사령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7년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 주임, 2008년 중국상용항공기유한책임공사 회장 및 서기를 역임했고 2011년 허베이성 성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지난해 3월 헤이룽장성 서기로 이동했다.
◇ 왕원타오 헤이룽장 대리성장
이번 양회에서 루하오(陸昊) 전 성장이 자연자원부 부장(장관 격)에 임명되면서 공석이 된 헤이룽장 성장 자리는 왕원타오(王文涛) 전 산둥성 부서기가 차지했다.
지난 22일 열린 헤이룽장 간부회의에 왕원타오가 등장하고 장 서기 다음에 배석했음이 방송을 통해 확인하면서 헤이룽장 '2인자'가 확실함을 예고하기도 했다. 왕원타오가 헤이룽장 부서기로 더 이상 산둥성 부서기, 지난(濟南)시 서기 등을 맡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왔고 26일 헤이룽장성 대리성장 임명이 확정됐다.
왕 성장도 시 주석과 인연이 있다. 시 주석이 상하이시 서기로 있을 당시에 상하이 황푸(黃浦)구 서기를 지냈다. 1864년생으로 장쑤성 난퉁(南通) 출신인 왕 성장은 푸단대에서 철학을 받았고 경영학으로 석사 학위를 마쳤다. 이후 상하이항천직공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당 대학 부학장까지 올랐고 2001년 12월 상하이시 쑹장(松江)구 발전계획위원회 주임으로 공직자가 됐다.
2005년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시 시장을 맡았고 2007년부터 상하이로 넘어가 황푸구 부서기, 서기를 거쳐 2011년 장쑤성 난창(南昌)시 서기를 역임했다. 이후 산둥성으로 이동해 당 부서기와 지난시 서기, 산둥성 당교 교장을 맡았으며 이번에 헤이룽장성 대리성장에 임명됐다.